20. 라몬만 상륙


북쪽과 남쪽으로부터 동시에 마닐라를 공격하겠다는 일본제14군의 계획에 따라 모리오카 스스무 중장이 지휘하는 제16사단은 1941년 12월 17일에 류큐 제도의 아마미오시마를 떠나 링가옌 만에서 남동쪽으로 360km 떨어진 라몬만을 향해 6일 간의 항해를 시작했다. 라몬만 부대는 링가옌 부대에 비하여 약했다. 전투부대는 제16사단(보병제9 및 제33연대 감편)의 보병3개 대대, 야포병 2개 대대를 중심으로 약 7,000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약간의 지원부대가 배속되어 있었다.


(라몬만 상륙상황도.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PI/USA-P-PI-8.html#8-3 P.140)


제16사단은 동시에 3곳(마우반, 아티모난, 시아인)에 상륙할 것이었다. 일단 상륙한 부대는 후속하는 지원부대를 기다리지 않고 즉시 내륙으로 진격할 계획이었다. 제16사단의 주력은 1번도로를 따라 진격하여 카비테를 점령하고 이어서 남쪽으로부터 마닐라로 쇄도할 것이었다.


마우반에는 츠네이로 나리요시 중좌가 지휘하는 보병제20연대제2대대와 야포병제22연대의 1개 중대가 상륙할 것이었다. 츠네이로 부대는 상륙 직후 내륙으로 진격하여 루반을 점령한 다음 남하하여 아티모난 부대를 지원할 것이었다. 만일 그럴 필요가 없어지면 츠네이로 부대는 북상하여 베이 호의 남안을 따라 마닐라로 진격할 것이었다.


아티모난에는 모리오카 중장이 직접 지휘하는 제16사단 주력이 상륙할 것이었다. 사단사령부, 사단통신대, 보병제20연대(제2대대 및 제1대대의 주력 감편), 수색제16연대, 야포병제22연대(제2대대의 2개 중대 감편), 공병제16연대주력, 야전고사포제47대대(1개 중대 감편), 독립야전고사포제31중대, 사단치중, 병참부대 및 선박관련부대로 이루어진 사단주력은 1번 도로를 따라 서진한 다음 베이 호의 가장자리를 따라 북상하여 마닐라를 남쪽으로부터 공격할 것이었다. 도중에 만나는 미군의 저항거점은 가급적 우회할 계획이었다.


시아인에는 기무라 미츠오 소좌가 지휘하는 보병제20연대제1대대(제3중대 및 기관총 1개 소대 감편)가 상륙하여 주력의 좌익을 보호할 것이었다. 이후 시아인 부대는 사단예비대가 될 것이었다.


라몬만 부대를 실은 24척의 수송선은 링가옌 부대의 첫번째 선단이 대만 북부의 지룽을 떠난지 6시간 후인 12월 17일 오후 3시에 제4호위대의 엄호를 받으며 류큐 제도의 아마미오시마를 출항했다. 제4호위대는 제1근거지대 사령관 쿠보 규지 소장이 지휘하는 경순양함 나가라, 제24구축대(우미카제, 야마카제, 카와카제, 스즈카제), 제16구축대 제1소대(유키카제, 도키즈카제), 부설함 아오타카, 소해정 4척, 초계정 2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라몬만 부대를 태운 호송선단은 23일에 미국잠수함 스컬핀에게 발견되었으나 적절한 회피로 공격을 피했다. 선단은 24일 새벽 1시 30분에 라몬만에 닻을 내렸으며 1시간 후에 병력들이 해안으로 출발했다.


마닐라 남쪽을 지키던 파커 소장의 남부루손군은 원래 제41사단(PA)와 제51시단(PA)로 이루어져 있었다. 개전 이후에 새로 편성된 제1정규사단(PA)이 배속되었으나 라몬만 상륙 당시 제1보병연대만이 전선에 도착한 상태였다. 제41사단이 마닐라 남쪽을 지켰으며 라몬 만을 포함한 마닐라 남서쪽은 제51사단이 지키고 있었다. 제51사단은 라몬만 상륙 당시 먼저 레가스피에 상륙하여 북상 중이던 기무라 지대를 상대하느라고 병력이 분산된 상태였다. 제1정규사단의 제1연대는 라몬만 상륙 당시 마우반 부근에 배치되어 있었다.


라몬만을 지키던 필리핀군의 문제는 야포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남부루손군은 155mm 평사포 6문을 보유한 제86야포연대의 2개 포대와 75mm 자주포 16문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이들을 모두 서해안의 바탕가스, 발라얀 및 나숙부만에 배치했다. 제51사단장 앨버트 존스 준장은  라몬만에 최소한 155mm 평사포 2문이 필요하다고 보고했으나 맥아더 사령부는 파견을 거부했다. 맥아더 장군은 일본군이 마닐라 남쪽의 서해안에 상륙할까봐 두려워했다. 실제로 마닐라 남쪽의 서해안에 상륙하면 평탄한 지형에 깔린 좋은 도로를 따라 북상하여 금방 마닐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일본군도 처음에는 서해안의 바탕가스 만에 상륙하려고 계획했다가 나중에 라몬만으로 바꾸었다.


결국 라몬만 상륙이 시작되었을 때 필리핀군은 화력이 부족했으며 많은 부대가 이리저리 이동중이었다. 23일 밤부터 제51사단장 존스 준장에게 보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23일 오후 10시에 아티모난 앞바다에서 적의 선단이 발견되었다는 보고에 이어 24일 오전 2시에는 적이 아티모난 앞바다에 닻을 내렸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어서 오전 4시에 마우반에 적이 상륙했다는 보고를 선두로 적의 상륙소식이 잇따라 들어왔다. 보고들은 일본군 병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아티모난에 상륙한 부대는 증강된 사단 규모, 마우반에 상륙한 부대는 증강된 여단 규모라고 평가했다.


가장 북쪽의 마우반에 상륙한 츠네히로 중좌의 보병제20연대제2대대는 해안에서 필리핀군 제1연대제2대대의 십자화망 속으로 뛰어들었다. 여기에 P-40 전투기 12대와 P-36 전투기 6대도 도착하여 일본군 병력과 수송선을 공격했다. 일본군은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과감히 돌진하여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오전 8시 30분에 마우반 시가지를 장악했다. 제1연대제2대대는 마우반에서 서쪽으로 8km 떨어진 삼팔록으로 물러나 다시 방어선을 폈다. 오후 2시 30분에 츠네이로 부대가 약 300명의 필리핀군이 지키는 삼팔록을 공격했으나 방어선을 뚫지 못했다.


시아인에 상륙한 보병제20연대제1대대는 상륙과정에서 저항을 받지 않았다. 상륙 직후 1개 중대는 마닐라 철도를 따라 타야바스 만으로 남하하고 대대 주력은 레가스피에서 북상 중인 기무라 지대와 만나기 위하여 1번 도로를 따라 남동쪽으로 전진했다. 타야바스 만으로 향한 중대는 저녁까지 파드르부르고스에서 8km 떨어진 지점에 도달했다. 제1대대 주력은 24일 오후 4시에 시아니 동쪽 24km 지점에서 코르데로 대령의 제52연대로부터 반격을 받았다. 3일 간의 전투를 치른 후에야 보병제20연대제1대대는 레가스피에서 북상한 기무라 지대와 만날 수 있었다.


모리오카 중장이 지휘하는 제16사단 주력은 아티모난에서 남쪽으로 4km 떨어진 해안에 상륙했다. 선두는 해안에서 필리핀군 제52연대 제1대대 A중대의 총격을 받아 그 자리에 못박혔다. 이어서 상륙한 수색제16연대는 적의 거점을 우회하여 최대한 빨리 진격하라는 명령에 따라 해안의 필리핀군 방어선과 아티모난 시가지를 우회하여 서쪽으로 진격했다. 후속한 일본군이 오전 9시에 아티모난 시가지로 진입하여약 500명의 필리핀군이 벌인 집요한 저항을 제압하고 오전 11시에 시가지를 장악했다. 


1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격하던 수색제16연대는 말릭버이에 접근했다. 말릭버이를 지키던 제52연대제2대대는 급히 방어준비를 서둘렀는데 비행제8전대의 경폭격기들이 날아와 차량 몇 대를 불태우고 방어선 구축을 방해했다. 공습을 받아 사기가 떨어진 필리핀군은 수색제16연대가 강력한 일격을 가하자 단번에 무너져 달아났다. 이로써 말릭버이는 간단하게 일본군 손에 떨어졌다.


존스 준장은 제52연대제2 및 제3대대(1개 중대 감편)를 투입하여 비나한에 급히 방어선을 폈다. 그동안 아티모난 소탕을 마친 일본군 주력이 말릭버이에 도착했다. 24일 오후에 말릭버이를  출발한 일본군이 비나한에 강력한 일격을 가하자 방어선이 다시 무너졌다. 필리핀군은 1번 도로를 따라 파그빌라오로 달아났다. 


제16사단은 24일 저녁까지 목표 지점을 모두 점령함으로써 상륙 초기의 가장 어렵고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이날 제16사단의 피해는 7,000명의 상륙병력 중 전사 84명, 부상 184명에 불과했다. 양륙상황은 만족스러웠고 대부분의 지원부대가 그날 저녁까지 상륙했다. 제14군 사령부는 제16사단의 상륙이 기대 이상의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링가옌만에 상륙하는 제14군 사령관 혼마 마사하루 중장. 1941년 12월 24일.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PI/USA-P-PI-8.html#8-3 P.143)


마닐라 북쪽에서는 링가옌 부대가 아그노 강으로 진출할 준비를 마쳤다. 일본군은 북쪽과 동쪽 측면의 안전을 확보했다. 25일 오전 11시에는 가미지마 지대(보병제9연대의 2개 대대, 야포병제22연대의 2개 중대 기간)가 링가옌 만의 남쪽 해안에 있는 산 페이비언을 점령하여 수송선을 위협하던 미군 야포를 쫓아내었다. 24일 아침에 혼마 장군은 참모들과 함께 바우앙에 상륙하여 제14군 사령부를 차렸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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