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아그노강 진출


일본군이 상륙하자 극동미육군사령부는 75mm 자주포 12문을 웨인라이트 소장의 북부루손군에 배속시켰다. 제192전차대대는 북부루손군을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북부루손군에 배속되지는 않았다.


웨인라이트 소장은 포조루비오에 있던 제26기병연대(PS)를 로사리오로 파견했다. 기병대는 22일 새벽 5시에 출발했다.

제26기병연대의 정찰장갑차소대는 본대보다 앞서 다모티스를 거쳐 북쪽으로 진출했다가 일본수색제48연대 및 전차제4연대에게 쫓겨 다모티스로 돌아왔다. 그러자 기병대 주력도 로사리오를 거쳐 다모티스로 와서 방어선을 폈다. 오후1시에 제5비행집단의 공중지원을 받는 일본군이 북쪽으로부터 다모티스를 공격했다.

당시 제26기병연대장 피어스 대령은 기병대 이외에 제12 및 제71연대의 보병중대 2개를 거느리고 있었으나 역부족이었다. 피어스 대령은 웨인라이트 소장에게 증원을 요청했고 웨인라이트 소장은 임시전차단장인 제임스 위버 준장에게 전차 1개 중대를 파견해달라고 부탁했다.

위버 준장은 휘발유 부족을 이유로 제192전차대대 C중대의 1개 소대 5대의 전차만 파견했다. 북상하던 5대의 전차는 아구 남쪽에서 일본군 경전차와 맞닥뜨렸다. 선두에 섰던 소대장 전차는 직격탄을 얻어맞고 불탔으며 나머지 4대의 전차는 로사리오로 물러났다. 오후 4시가 되자 아린게이에 상륙했던 대만보병제1연대와 산포병제48연대가 다모티스 전투에 가세했다. 제26기병연대는 중과부적으로 다모티스를 내주고 동쪽으로 물러섰다. 오후 7시까지 일본군이 다모티스를 완전히 점령했다.


다모티스 상실이 불가피해지자 웨인라이트 소장은 22일 오후에 어다네타에 주둔 중이던 제71사단(제71연대 감편)에게 북쪽으로 40km  떨어진 다모티스 남쪽으로 이동하여 일본군의 남진을 저지하라고 명령했다. 제26기병연대는 제71사단에 배속되었다. 제71사단장 클라이드 셀렉 준장은 사단의 우익을 맡은 제26기병연대에게 로사리오를 방어하라고 명령했다. 바기오에 있던 보넷 중령의 제71연대(제1대대 감편)가 남하하여 북부루손군 주력과 합류할 시간을 벌어주려는 것이었다. 


(링가옌 만 상륙상황도.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PI/USA-P-PI-8.html#8-1 .P.124)


셀렉 준장은 22일 오후 4시 30분에 직접 로사리오에 와서 철수하는 제26기병연대의 주력을 로사리오 서쪽에, F 기병중대를 로사리오 북쪽에 배치했다. 잠시 후 다모티스로부터 일본군이 쳐들어왔다. 일본군의 선두는 전차제4연대와 수색제48연대였으며 주력인 이마이 대좌의 대만보병제1연대가 뒤따랐다. 일본군은 산포병제48연대(제1 및 제2대대 감편)의 화력지원을 받고 있었다.

제192전차대대 C 중대의 경전차 4대가 최전선에서 방어선을 지켰으나 중과부적으로 밀려났다. 그러자 일본전차가 방어선에 돌입하면서 제26기병연대의 방어선이 무너졌다. 일본전차가 후퇴하는 기병대를 따라잡아 큰 피해를 입혔다. 토머스 트랍넬 소령이 후퇴하는 병사들을 모아 로사리오 서쪽의 작은 강에 걸린 다리에서 마지막 전차를 중심으로 필사적인 방어선을 폈다. 전차는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불길에 휩싸였지만 트랍넬 소령이 급조한 방어선에서 가까스로 일본군의 진격을 막는데 성공함으로써 제26기병연대는 붕괴를 면할 수 있었다.


패배한 제26기병연대의 주력이 로사리오로 철수했을 때 로사리오 북쪽을 지키던 F 기병중대는 야나기 대좌가 이끄는 보병제47연대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압도적인 전력의 열세로 인하여 F 중대는 단번에 로사리오 시내까지 밀려났다. 미군에게는 천만다행으로 이때 보병제47연대는 샌 페이비언 공략을 위하여 일부 병력을 아구로 돌려보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자 야나기 대좌는 공격을 중지하고 다모티스로부터 진격 중인 대만보병제1연대와 전차를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제26기병연대의 주력은 로사리오를 빠져나갔고 F 중대도 뒤따랐다.


웨인라이트 소장은 후퇴하던 제26기병연대에게 로사리오-바기오 도로의 교차점을 지키라고 명령했다. 바기오에 있던 제71연대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바기오를 지키던 제71연대는 제26기병연대가 교차로를 방어중이라는 소식은 듣지 못하고 대신 일본군이 로사리오를 점령했다고 보고하는 무전을 엿들었다. 제71연대장 보넷 중령은 남쪽으로 통하는 도로가 이미 막혔다고 착각하여 바기오에 머물렀다. 결국 다음날 새벽에 제26기병연대는 교차점에서 밀려나 남쪽으로 철수했다. 

이제 고립된 바기오에 남은 제71연대는 일본군이 남쪽과 북쪽에서 동시에 접근하자 동쪽으로 빠져나가 길도 없는 산맥을 넘어 카가얀 하곡으로 도망쳤다. 필리핀의 여름수도인 바기오는 일본군에게 넘어갔다. 


이로써 일본군은 작전 당일의 목표를 모두 점령했다. 일본군에게 의미있는 저항을 보여주어 계획을 방해한 것은 제26기병연대가 유일했다. 훈련이 부족하고 장비가 열악한 필리핀군은 일본군을 보자마자 무질서하게 도망쳤다. 링가옌 만 남쪽에 주둔 중이던 제21야포연대장 리처드 말로니 대령은 연대본부 앞의 해안도로를 따라 도망치는 필리핀군 병사들을 잡아서 정렬시킨 다음 사단사령부로 돌려 보냈지만 도중에 모두 사라졌다.


12월 23일 아침이 되었을 때 제71사단(제71연대 감편)은 시손에 주둔하고 있었다. 제72연대와 제71공병연대가 방어선을 펴고 후방에서 파울러 중령의 제71야포연대가 화력지원을 맡았다. 큰 피해를 입은 제26기병연대는 남쪽 포조루비오에서 재편성 중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극동미육군사령부 예비로 카바나투안에 주둔 중이던 제91사단을 북부루손군에 배속시켜 주었다. 웨인라이트 소장은 제91전투단에게 23일 정오까지 포조루비오 북쪽에 도착하라고 명령했다.


23일 오후 12시 50분에 보병제47연대의 2개 대대가 남하하여 제71사단을 공격했다. 제71사단은 제71야포연대의 화력지원에 힘입어 공격을 막아내었다. 이때 일본기가 보병제47연대를 오폭하여 약 7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잠시 후 수색제48연대와 전차제4연대가 도착하자 일본군은 제10독립비행대 및 비행제16전대의 지원아래 공격을 재개했다. 


일본군이 전차를 앞세우고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하자 필리핀군은 금방 무너졌다. 제71사단이 포병대를 무방비 상태로 버려두고 달아나면서 오후 6시 30분에 시손이 떨어졌다. 북상 중이던 제91전투단은 일본기가 아그노 강의 다리를 끊어버리는 바람에 멀리 돌아야 했다. 웨인라이트 장군은 패주하는 제71사단에게 포조루비오 북쪽에 방어선을 펴라고 명령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포조루비오에서 재편성중이던 제26기병연대는 비날로난으로 남하하여 재편성을 마치라는 명령을 받고 오후 7시에 포조루비오를 떠났다. 같은 시각 제91전투단이 포조루비오에 도착하여 방어선을 폈다. 그러나 시손을 점령한 일본군이 남하하여 23일 밤에 포조루비오를 강타하자 제91전투단의 방어선은 단번에 무너졌다.


웨인라이트 장군은 23일 오후에 북부 루손을 지키기 어렵다고 보고 맥아더 장군에게 아그노 강으로 후퇴하겠다고 요청했다. 그는 아그노 강에서 일본군의 예봉을 꺾은 다음 반격할 요량으로 극동미육군사령부 예비인 필리핀 사단(US)을 북부루손군에 배속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맥아더 장군은 아그노 강으로의 후퇴는 허용했으나 필리핀 사단의 배속은 거부했다. 따라서 웨인라이트 소장은 필리핀 사단없이 반격계획을 짜야만 했다.


일본군은 24일 새벽부터 아그노 강 북쪽에 남은 마지막 미군 거점인 비날로난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선두에 선 전차제4연대가 오전 5시에 비날로난 북쪽과 서쪽을 방어하고 있던 제26기병연대의 방어선을 공격했다. 가까스로 재편성을 마친 제26기병연대는 대전차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차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그러자 일본전차대는 기병대를 뒤따르던 대만보병제2연대에게 맡기고 방어선을 우회하여 비날로난 시내로 들어가 재편성 중이던 필리핀군을 남쪽으로 쫓아버렸다. 그동안 제26기병연대는 대만보병제2연대 선두의 공격을 막아내었을 뿐 아니라 반격을 가하여 위험에 빠뜨렸으므로 일본전차가 급히 돌아와야 했다.  잠시 후 대만보병제2연대 주력이 전장에 도착하면서 제26기병연대는 곤경에 빠졌으나 끝까지 방어선을 지켰다.


이때 웨인라이트 장군이 전황을 파악하러 비날로난에 도착했다. 그는 제71사단과 제91전투단의 모습은 간데없고 제26기병연대만이 압도적인 일본군의 공격에 맞서 악착같이 방어선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미 전황이 기울었다고 판단한 웨인라이트 장군은 제26기병연대장 피어스 대령에게 철수명령을 내렸다. 개전 당시 842명에서 이제 450명으로 줄어든 제26기병연대는 부상병과 함께 오후 3시 30분에 비날로난을 떠나 아그노 강 남쪽의 타유그로 철수했다. 이로써 북부 루손이 일본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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