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최종 방어선으로의 철수
1942년 2월 12일 아침에 엠파이어스타와 다른 1척의 상선이 해군 및 공군의 지상요원과 기술자 등을 태우고 순양함 더반과 구축함 2척의 호위를 받으면서 싱가포르를 떠났다. 이 선단은 일본군의 심한 공습을 받았으며 더반이 1발, 엠파이어스타는 3발의 명중탄을 맞았으나 놀라울만큼 적은 사상자만 기록한 채 바타비아에 도착했다.
퍼시발 중장은 12일 오전 중에 서부지구, 마시포스, 그리고 제3군단을 방문하여 잇달아 회의를 가졌다. 그는 부킷티마 도로를 거쳐 일본군이 바로 싱가포르를 점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부킷티마 도로의 방어를 강화하기 위하여 북동쪽 및 남동쪽 해안의 병력들을 철수시켜 방어에 투입했다. 따라서 강력한 방어 설비를 갖춘 창이 요새도 포기했다. 퍼시발 중장은 싱가포르 총독 토머스 경에게 사람을 보내어 일본군의 도착이 멀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총독은 라디오 방송국을 폭파하고 재무국의 지폐를 태웠다.
퍼시발 중장은 기존 계획보다 축소된 새로운 최종 방어선을 설정했다. 동쪽으로부터 칼랑 비행장 - 파야레바 활주로 - 우들라이 교차로 - 톰슨 마을 - 아담 도로 - 파레 도로 - 탕글린 역 - 부오나 비스타 마을(해안)로 이어지는 방어선이었다. 모든 부대는 13일 아침까지 새로운 방어선에 도착해야 했다.
북부 지구에서는 일본근위사단이 12일 아침부터 니순을 지키던 제8여단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제8여단은 제2/10발루치대대를 만다이 도로에 배치하고 우익에 제1/8펀자브대대를 배치한 상태였다. 재편성 과정에서 대부분 훈련이 부족한 보충병으로 채워진 펀자브대대는 근위보병제4연대의 제2 및 제3대대가 압박을 가하자 흩어져 버렸다. 펀자브대대의 붕괴로 니순 북쪽에 있던 제53여단이 고립될 위기에 처하자 제11사단장 키 소장이 남쪽의 제28여단으로부터 제2/9구르카대대를 빼내어 투입했다. 구르카대대는 일본군이 중요한 고지들을 차지하기 전에 제153야포연대 제499야포대의 지원 아래 반격을 실시하여 펀자브대대의 방어선을 되찾았다.
히스 중장은 12일 정오에 제11 및 제18사단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니순 북쪽에 있던 제53여단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근위사단이 추격했다. 전차를 앞세운 일본군이 니순 교차로에 접근하자 제499야포대의 지원을 받는 제2/10발루치대대가 막아섰다. 제273대전차포대가 일본전차 3대를 파괴하자 일본군은 진격을 멈추었고 이 틈을 타서 제53여단은 니순 남쪽에 도달했다. 이후 제53여단이 후위를 맡는 가운데 제8 및 제28여단이 철수했다. 제53여단은 일본군의 추격을 막기 위하여 니순 남쪽에 남았으며 저녁 8시에는 니순의 탄약고를 폭파했다.
13일 아침에 근위사단장 니시무라 중장은 제53여단이 아직 니순 남쪽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포위 격멸하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제25군의 명령대로 파야레바 방면으로 서진하는 대신 제53여단을 포위하기 위하여 근위보병제4연대의 제2 및 제3대대를 남쪽으로 전진시켜 톰슨 도로를 차단하려고 했다. 정오가 되어서야 포위될 위험을 깨달은 제53여단은 황급히 철수했으며 일본군이 도로를 차단하기 직전에 빠져 나갔다.
13일 아침까지 껍데기만 남은 제18사단도 철수하여 마시포스와 합류했다. 남부지구의 병력들도 창이 요새를 폭파하고 철수하여 퍼시발 중장이 새로 설정한 최종 방어선에 도착했다.
(1942년 2월 11일 현재 싱가포르 섬의 상황.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 The War Against Japan, Vol.1 The Loss of Singapore, P.399)
방어선 중앙에서는 일본제5사단이 좌익에 보병제9여단, 우익에 보병제21여단을 배치하고 12일 아침부터 마시포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오전 8시 30분에 일본전차가 경마장 마을에 나타났으나 제45대전차포대의 1개 중대가 사격을 가하여 정지시켰다. 하지만 오후 들어 일본군의 압력이 거세지자 마시-베레스포드 준장은 아담도로-페레도로 방면으로 철수 명령을 내렸다. 철수는 야포 및 고정식 해안포의 엄호를 받았으며 일본기의 공습과 기총소사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12일 저녁에 마시포스는 제3/17도그라스대대와 함께 최종 방어선에 배치되었다.
(1942년 2월 11일 아침 현재 남서방어선 현황. Australia in the War of 1939–1945, Army, The Japanese Thrust, P. 360)
울루판단 도로를 지키던 제22호주여단장 테일러 준장은 12일 아침이 되자 과로로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 상태로 하루종일 일본군의 공격에 맞서 여단을 지휘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제2/18호주대대장 발리 중령에게 임시로 여단장 직을 넘기자마자 곯아떨어져 서부지구사령부로 실려갔다. 사령부에서 깨어난 테일러 준장은 여단에 복귀하려 했으나 서부지구사령관 벤넷 소장이 테일러 준장을 입원시키고 발리 중령을 정식으로 제22호주여단장으로 임명했다.
테일러 준장의 예상대로 일본제18사단은 보병제114연대를 죄익대로, 보병제56연대를 우익대로 삼아 12일 하루 종일 야포와 항공기의 지원 아래 병력이 약 800명으로 줄어든 제22호주여단을 공격했다. 일본군은 몇 군데에서 방어선을 뚫었으나 그때마다 호주군이 총검돌격으로 몰아내었다. 제22호주여단은 야포 지원 아래 12일 저녁까지 방어선을 지켰으나 오후 7시에 울루판단 도로를 굽어보는 요충지인 200고지가 보병제114연대제3대대에 점령당했다. 호주군은 야포의 화력 지원 아래 2차례에 걸쳐 결사적인 총검돌격을 실시했으나 탈환에 실패했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진 발리 중령은 서부지구사령부의 허가를 받아 철수 명령을 내렸다. 제22호주여단의 철수는 자정에 실시되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남쪽에 있던 제44여단은 방어선의 북쪽 일부가 제22호주여단이 지키던 127고지를 공격하는 보병제56연대와 교전했으며 밤이 되자 제22호주여단의 철수에 맞추어 최종 방어선으로 물러났다. 해안가에 자리잡은 제1말레이여단의 방어선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조용했다.
(1942년 2월 12일 - 15일에 걸친 싱가포르 섬의 상황.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 The War Against Japan, Vol.1 The Loss of Singapore, P.415)
1942년 12월 13일 아침이 되자 제53여단과 제1말레이여단을 제외한 모든 부대는 싱가포르 주변에 설정된 45km 길이의 방어선에 배치되었다. 제53여단은 정오까지 니순 남쪽에 있었으며 제1말레이여단은 파시르판장 능선의 서쪽 끝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방어선의 동쪽 끝은 제2말레이여단으로 칼랑 비행장에서 파야레바 활주로까지를 맡았다. 제11사단이 여기에서 우들라이 서쪽 1.6km 지점까지를 방어했다. 다음은 제18사단 영역이었다. 니순 남쪽에서 아슬아슬하게 탈출한 제53여단이 오후에 도착하여 브로델 도로 북쪽에 있는 중국인 공동묘지까지, 마시포스를 흡수한 제55여단이 아담 파크까지, 톰포스를 흡수한 제54여단(벡하우스 준장)이 부킷티마 도로까지 맡았다. 제2고든대대가 파레도로를 맡았고, 제8호주사단이 탕글린 역까지 담당했다. 제44여단이 부오나비스타 도로를 방어했고 이후 해안까지는 제1말레이여단이 맡았다. 제1말레이여단은 이외에도 파시르판장 능선의 서쪽 끝인 270고지, 소년원 도로를 굽어보는 125고지, 그리고 파시르판장을 점령하고 있었다. 당시 제1말레이여단은 제2로얄대대, 제1 및 제2말레이대대, 제5베즈앤드허츠대대, 그리고 혼성공병대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8호주사단장 벤넷 소장은 모든 호주군을 탕글린 막사에 집결시켰다. 그곳에서 최후까지 저항할 결심이었다.
이맘때쯤 싱가포르 수비대는 지휘관에 대한 믿음을 잃고 원래부터 낮았던 사기는 완전히 박살났다. 싱가포르 시내에서는 자포자기한 탈영병들이 약탈을 일삼았는데 숫자가 많고 무장을 하고 있어 헌병대도 속수무책이었다. 일부는 보트를 타고 싱가포르를 탈출하려고 시도했다. 이런 탈영병은 대부분 행정병이나 최근에 싱가포르에 도착한 보충병으로 훈련이 부족하고 군기가 빠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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