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항해

 

1941년 10월 26일 토요일 오후 1시 8분에 프린스오브웨일스는 닻을 올리고 외해로 나갔다.

전쟁내각에서 싱가포르 파견을 결정한지 6일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구축함 엘렉트라와 익스프레스, 그리고 긴 여정의 첫 단계에 동행하도록 서부연안사령부(Western Approach)에서 내어준 구축함 헤스페러스가 호위했다.

톰 필립스 제독의 참모들이 지참한 열대용 방서모를 보고 자신들의 행선지를 알아차린 프린스오브웨일스의 승조원들은 미국과 협상 중인 일본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중요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유럽을 떠나 머나먼 극동으로 간다고 생각하여 분노했다.

 

정식으로 G 부대라는 이름을 받은 4척의 함정은 프랑스에서 발진하는 독일의 장거리 정찰기를 피해 아일랜드의 북쪽을 돌아 대서양으로 진입했다.

지중해를 통과하는 것은 위험했으므로 아프리카를 돌아서 가야 했다.

첫 목적지는 시에라리온의 프리타운이었다.

G 부대는 18 - 20노트의 속력을 유지했는데 이 정도면 유보트가 추적하기 힘들었으며 더 빠르면 구축함의 연료소비가 심했다.

유보트의 위협을 피하여 G 부대는 지그재그로 운행했다.

일상은 4시간 근무 8시간 휴식이라는 사이클로 돌아갔으며 하루 2시간씩 매일 포격 연습이 있었다.

모두들 이번 임무를 전투보다는 일종의 외교임무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흘째 되던 날 4번째 구축함인 레기온이 합류했으며 나흘째 되던 날 구축함 헤스페러스와 레기온은 지브롤터로 돌아갔다.

 

그리녹을 출발한지 11일째인 1941년 11월 5일에 G 부대는 프리타운에 들러 급유를 받고 다음날 출항했다.

승조원들은 상륙허가를 받아 하룻밤을 육지에서 즐겼으며 다음날 출항할 때 전원 시간 내로 돌아왔다.

프리타운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G 부대에서는 적도제가 치러졌다.

 

열대 해역에 들어섬에 따라 프린스오브웨일스의 시원찮은 환기 능력 때문에 승조원들의 고생이 심해졌다.

군의관 퀸 소령은 전투배치 훈련 중에 해치를 닫으면 열사병의 우려가 있다고 필립스 제독에게 경고했다.

기관실이나 보일러실에서 일하는 승조원의 고생이 특히 심하여 2시간마다 교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화부 몇몇은 더위먹고 실신했다.

당시 보고서에 나타난 구역별 최고 온도는 다음과 같다.

 

기관실 - 섭씨 50도, 보일러실 - 섭씨 58도, 기계실 - 섭씨 66도, 작업장 - 섭씨 38도, 어뢰작업실 - 섭씨 43도, 하갑판 - 섭씨 35도, 사관실 - 섭씨 27도

 

G 부대가 아프리카의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던 11월 10일에 처칠 수상은 런던 시장의 취임식에서 연설했다.

이 연설에서 처칠은 강력한 신형전함과 가장 큰 항공모함으로 이루어진 막강한 함대가 인도양을 거쳐 태평양으로 향하고 있으며 만일 미국이 일본에게 선전포고한다면 영국은 1시간 내로 미국을 따를 것이라고 선언했다.

 

두번째 기항지 케이프타운을 앞두고 G 부대는 심한 풍랑을 만나 구축함 익스프레스에서 1명이 실종되었다.

프리타운을 떠난지 10일 만인 1941년 11월 16일에 프린스오브웨일스는 케이프타운에 입항했다.

필립스 제독은 비행기를 타고 프리토리아로 가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상인 스머츠 원수와 회담했다.

G 부대는 이틀간 머물렀는데 승조원들은 최소한 1박은 육지에서 지냈다.

시민들은 우호적이었으며 많은 승조원들이 시민들의 집에 초대받아 하룻밤을 지냈다.

프린스오브웨일스는 케이프타운에서 39명의 승조원을 새로 받았는데 이들은 대부분 먼저 기항했던 영국함정에서 탈영했다가 붙잡혀 영창을 살던 장병들이었다.

리치 대령은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면서 전과 기록을 말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스머츠 원수와 회담을 마친 필립스 제독이 돌아오자 G부대는 11월 18일 오후에 케이프타운을 출항했다.

그날 아침에 항공모함 헤르메스가 간단한 정비를 위하여 인접한 시몬스타운 해군기지에 입항했는데 당시 헤르메스에게는 특별한 임무가 없었다.

따라서 피해를 입은 인도미터블 대신 헤르메스를 G 부대에 편성하는 것은 가능했다. 

헤르메스는 탑재기가 20대로서 영국해군에서 가장 작은 항공모함이었지만 그래도 G 부대에 배속되었으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군성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프린스오브웨일스는 헤르메스의 불과 몇 km 옆을 지나 바다로 나섰다.

 

(영국항공모함 헤르메스.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사진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HMS_Hermes_(95))

 

케이프타운을 떠난 G 부대는 콜롬보를 향했으며 도중에 급유를 위하여 모리셔스와 아두 환초에 들렀다.

아두 환초에는 영국해병대의 분견대가 근무 중이었는데 프린스오브웨일스의 방문은 축복이었다.

2달 동안 해병대의 식사는 딱딱한 비스킷과 청어 또는 정어리, 토마토, 분말 계란이 전부였고 하루 물 사용량은 식수와 세면을 합쳐 1리터 남짓했다.

프린스오브웨일스는 해병대를 위하여 크리스마스 만찬 수준의 식사를 만들어 보내주었을 뿐 아니라 갓 구운 빵과 싱싱한 과일, 야채, 고기 등 신선 식품과 식수에다가 맥주 및 럼주까지 잔뜩 주었다.

갑자기 너무 잘 먹은 해병대원 대부분이 설사를 했다.

 

G 부대는 1941년 11월 27일에 콜롬보에 도착했다.

리펄스는 이미 도착하여 트링코말리에 정박중이었으나 지중해 함대에서 파견한 구축함 인카운터와 주피터는 도착하지 않았다.

톰 필립스 제독은 콜롬보에 도착하자마자 카탈리나 정찰비행정을 타고 싱가포르로 먼저 날아가 작전을 논의했다.

 

11월 28일에 인카운터와 주피터가 도착하자 다음날인 29일에 프린스오브웨일스는 구축함 엘렉트라, 익스프레스, 인카운터, 주피터와 함께 콜롬보 항을 나섰고 리펄스도 트링코말리를 출항했다.

해상에서 프린스오브웨일스와 리펄스가 만나면서 G 부대는 Z 부대(Z Force)로 이름이 바뀌었다.

필립스 제독이 없는 상황에서 리펄스의 함장 윌리엄 테넌트 대령이 선임이었으므로 Z 부대를 지휘했다.

Z 부대는 3일 간의 항해를 마치고 1941년 12월 2일 오후에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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