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G부대(1) - 리펄스

 

G부대의 파견 결정이 났지만 3척의 함정이 싱가포르에 도착하려면 몇 주가 필요했다.

전함 프린스오브웨일스는 지중해에서의 선단호송임무를 마치고 2주 전에 스캐파플로에 돌아온 참이었다.

신예 항공모함 인도미터블은 사흘 전에 영국을 출항하여 카리브 해를 향하여 대서양을 건너고 있었다.

인도미터블은 카리브 해에서 함재기 및 함정 승조원들을 훈련시킨 후 극동으로 향할 것이었다.

순양전함 리펄스는 인도양을 향하고 있었다.

 

(순양전함 리펄스.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HMS_Repulse_(1916)

 

리펄스는 1914년에  R급 전함으로 기공되었으나 자매함 리나운과 함께 건조 도중에 순양전함으로 바뀌어 1916년에 취역했다.

주포는 15인치 연장포 3기, 합계 6문이었으며 부포는 4인치 포 12문이었다.

배수량은 32,000톤, 출력은 112,000마력으로 최고 속력은 32노트였다. 

어뢰에 대비하여 수선하 함체 일부에 폭 5.2m 의 벌지를 두르고 있었다.

 

리펄스는 1917년 11월에 벌어진 제2차 헬리골란트 바이트 해전에 참가하여 독일순양함 쾨니히스베르크에게 15인치 주포탄 1발을 명중시켰는데 이것이 리펄스가 함생을 통하여 유일하게 적함에게 명중시킨 주포탄이었다.

종전 이후 리펄스는 다른 영국해군함정들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

1925년에 리펄스는 황태자였던 에드워드를 태우고 남미와 남아프리카를 순항했으며 나중에는 싱가포르도 방문했다.

 

리펄스는 86만 파운드를 들여 1919년부터 21년까지 개장을 실시했다.

장갑판이 6인치에서 9인치로 늘어났으며 벌지도 추가했다.

이로써 중량이 4,600톤 늘어났는데 기관은 교체하지 않았으므로 최고 속력은 29노트로 떨어졌다.

리펄스는 1933년부터 3년간 100만 파운드 이상을 들여 다시 개장했는데 이때는 주로 대공무장을 강화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개전했을 때 리펄스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순양전함 특유의 약한 방어력에 더하여 제2차 개장에도 불구하고 대공 무장이 빈약한 것이 결점이었다.

리펄스의 대공 무장은 수동으로 조작하는 4인치 대공포 8문과 2파운더(40mm) 폼폼 기관포 8연장 2기, 16문이 전부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지 4일 만에 리펄스는 해상에 나가 아이슬란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의 해역을 감시했다.

리펄스는 대서양으로 뛰쳐나오는 독일순양함을 격침하고 독일로 돌아가는 독일 상선들을 나포하는 임무를 맡았으나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후 리펄스는 39년 12월에 영국에 파병되는 제1캐나다사단 장병 20,000명을 실은 병력수송함 5척을 안전하게 호송했다.

1940년에는 노르웨이 전역에 참가했으나 독일함정들을 만나지 못했으며 이후 북대서양 초계와 선단 호송임무에 참가했는데 비스마르크 추격전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말레이 해전 당시 리펄스의 승조원들은 대다수가 1939년부터 근무했으며 리펄스의 모항 플리머스에 있는 데번포트 훈련소(Devonport Manning Depot)출신이었다.

데번포트 주민들은 대주가(guzzler)로 유명했으므로 해군기지의 별명은 "Guz" 였고 데븐포트에서 수병들을 공급받은 리펄스의 별명 또한 "거즈쉽"(Guz Ship)이었다.

 

리펄스는 1,181명의 승조원과 필요시 사령부 요원 24명을 태울수 있게 설계되었으며 싱가포르로 향할 당시 장교 69명과 부사관 및 수병 1,240명이 타고 있었다.

전쟁시 리펄스 크기의 배에 104명 정도 인원이 늘어나는 것은 평균보다 적은 것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승조원 1인당 공간이 넓었으며 환기도 잘 되었기 때문에 열대 해역에서 리펄스는 프린스오브웨일스보다 쾌적했다.

 

리펄스의 함장 윌리엄 테넌트 대령은 영국해군에서 가장 뛰어난 장교 중 한명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테넌트 대령은 됭케르크 철수작전시 구축함 울프하운드를 타고 해안에 상륙하여 뛰어난 통솔력으로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을 독려하면서 질서정연하게 보트에 실어 대기 중인 철수선에 보냈다.

그는 6월 2일에 마지막 보트에 올라 해안을 돌며 확성기로 방송하여 해안에 남은 영국병사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철수했다.

테넌트 대령은 이 일로 동료와 상관들에게 크게 칭찬을 받았으며 6월 7일에 바스 훈장을 받았다.

이후 수병들은 테넌트 대령을 '던커크 조'(Dunkirk Joe)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리펄스의 장교들은 다른 배와 마찬가지로 현역 장교와 예비역 장교가 섞여 있었으며 해병대 장교가 3명, 그리고 왈루스 수상정찰기를 다루는 해군항공대(Fleet Air Arm) 장교가 3명 있었다.

특이한 것은 호주해군의 장교후보생 5명으로서 이들은 영국에서 호주순양함 오스트레일리아에 오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영국에 도착해 보니 이미 오스트레일리아는 인도양으로 떠난 후였으므로 이들은 클라이드에서 리펄스를 타고 인도양으로 향했다.

 

부사관 및 수병의 60% - 70% 정도는 전쟁 전부터 복무 중이던 정규병이었으며 나머지는 개전 이후 징집된 병력이었다.

120명 정도는 16세 내지 17세의 소년이었으며 130명은 해병대였다.

 

전반적으로 리펄스의 규율은 엄정했고 사기는 높았으며 함장은 존경받고 있었다.

승조원들은 사격술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개전 이래 56,000km 에 달하는 호송 임무를 맡으면서 1척의 수송선도 상실하지 않았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다만 개전 이래 한번도 적에 대해 15인치 주포를 사용해 보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했으며 주포 사격을 해 볼 기회를 바라고 있었다.

1941년 8월 28일에 리펄스는 WS11 선단을 호송하라는 명령을 받고 영국 클라이드 항을 출항했다.

WS11 선단은 아프리카를 돌아 수에즈로 병력과 군수품을 수송하는 선단이었다.

리펄스는 인도양에 들어서면 선단을 떠나 트링코말리로 향할 것이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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