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펠렐리우 상륙

 

미제1해병사단은 1944년 9월 15일 아침에 팔라우 제도의 펠렐리우 섬에 상륙했습니다.

상륙을 앞두고 구형전함 5척, 중순양함 4척, 경순양함 4척, 구축함 14척으로 이루어진 제시 올덴도프 소장의 포격부대가 9월 12일 오전 5시 30분부터 3일간 16인치 포탄 519발, 14인치 포탄 1,845발, 8인치 포탄 1,427발, 6인치 포탄 1,020발, 5인치 포탄 12,937 발 등 총 2,255톤의 포탄을 퍼부었으나 일본군의 방어진지를 무력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상륙해안은 비행장이 자리한 펠렐리우 섬 남서쪽 해안으로 총 길이가 2km 정도였으며 북쪽으로부터 차례로 화이트1, 2, 오렌지1,2,3 으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최초 상륙부대는 총 5개 대대로서 북쪽으로부터 제3/1대대, 제2/1대대, 제1/5대대, 제3/5대대 그리고 제3/7대대 순이었습니다.

렉키 이병은 제2/1대대 소속이니까 화이트2, 유진 일병은 제3/5대대 소속이니까 오렌지2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펠렐리우 상륙작전 상황도. 윗쪽의 화살표 머리가 렉키 이병이 상륙한 지역, 밑의 화살표가 유진 일병이 상륙하고 이동한 경로입니다. 비행장 북쪽의 화살표와 자동차 표시는 일본군 전차부대의 역습 경로입니다.) 

 

상륙해안에는 일본군의 방어진지가 상당히 많이 살아남아서 상륙하는 병력들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상륙 자체에 큰 혼란은 없었으나 일부 병력들은 자기 해안이 아닌 곳에 상륙하여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제5편에서 보면 L/3/7 중대 소속의 해병대원 한명이 자신의 상륙해안보다 북쪽인 오렌지2 해안에 상륙하여 제3/5대대원에게 여기가 제3/7대대냐고 물어봅니다.

Love 중대가 L 중대지요.

그러자 그 제3/5대대원이 오른쪽(=남쪽)인 오렌지3 해안으로가라고 말합니다.

 

(여기가 제3/7대대냐고 물어보는 L/3/7 중대 소속의 해병대원에게 오른쪽인 오렌지3 해안으로 가라고 이야기하는 제3/5대대의 해병대원)

 

(제3/5대대의 해병대원에게서 오른쪽에 있는 오렌지3 해안으로 가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L/3/7 중대 소속의 해병대원)

 

(C8C8 거리면서 일본군의 총탄을 뚫고 오렌지3 해안으로 향하는 L/3/7 중대 소속의 해병대원. 무사히 잘 갔으려나..)

 

일본군은 오후 5시경에 13대의 전차와 1개 중대의 보병을 동원하여 제2/1대대와 제1/5대대의 경계선을 공격해 왔습니다.

일본군 전차 지휘관은 평탄한 비행장에 들어서면서 해병대의 선두와 마주치자 보병들을 떼어놓고 고속으로 해안에 있는 제2/1대대 본부를 향하여 공격했습니다.

이것은 훌륭한 전술로서 만약 일본 전차가 보병과의 합동작전을 고집했다가는 당시 분대당 1문 꼴로 배치되어 있던 바주카포에 의하여 일본전차는 몰살당했을 것입니다.

대신 고속으로 해병대의 방어진지를 돌파함으로써 기습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때 일본전차의 절반 가량에는 외부에 약 8명에서 10명 가량의 일본군이 타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5연대장 해리스 대령은 일본전차의 접근이 가능한 지역에 37mm 대전차포 12문을 배치해 놓고 있었고 해안에서는 제2/1대대를 지원하던 셔먼전차 1개 소대가 급유 중이었습니다.

셔먼전차는 40m 쯤 이동한 후 일본전차를 향하여 75mm 철갑탄 사격을 가했는데 명중탄들은 모두 일본전차를 과관통하여 뒤로 통과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셔먼전차는 고폭탄으로 바꾸어 사격했는데 일본전차를 잡는데는 고폭탄이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잠시 후 남쪽에서 제1/5대대를 지원하던 셔먼전차 1개 소대가 북상하여 일본전차 사냥에 동참하면서 일본전차는 거의 전멸했습니다.

일본전차에 의한 유일한 위협은 75mm 곡사포를 향해 달려들었던 전차 1대였는데 곡사포의 필사적인 영거리 직사로 겨우 저지했습니다.

이로써 일본전차 13대중 11대가 격파되고 2대가 달아남으로써 일본군의 역습은 실패했습니다.

일본전차에 탔던 보병도 이 과정에서 대부분 사살되었고 일본전차를 따라왔던 약 1개 중대의 보병도 해병대와의 교전에서 대부분 전멸했습니다.

 

이후로도 일본군은 오후 5시 50분, 7시 20분과 16일 새벽에 각각 2대의 탱크를 앞세운 1개 소대 가량의 부대로 해병대를 공격했습니다.

이번에 일본군들은 보병과 전차와의 합동공격을 시도했으나 해병대는 60mm 박격포와 소화기 사격으로 일본군 보병을 전차에서 분리한 후 몰살시켰고 전차는 바주카포가 처리하거나 또는 지원차 달려온 셔먼전차가 처리했습니다.

제5편에서 일본전차가 등장하는 전투는 오후 7시 20분에 유진 일병이 소속된 제3/5대대 정면을 공격해 온 일본군의 공세를 묘사한 것입니다.

 

(일본군 전차와 보병을 분리하기 위하여 유진 일병의 분대가 발사한 60mm 박격포탄이 작렬하고 있습니다.)

 

1944년 9월 15일에 실시된 펠렐리우 상륙작전에서 미제1히병사단은 상륙 첫날에만 1,111 명의 사상자를 기록했습니다.

피투성이 상륙전의 대명사인 타라와 전투에서 첫날 사상자가 약 1,500 명인 것과 비교해보면 펠렐리우 전투 또한 타라와 전투에 버금가는 처절한 전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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