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공격준비(1) - 계획

 

일본은 1940년 2월 9일에 중국 남부의 작전을 담당하는 남지나파견군을 창설했다.

창설 당시 지나파견군 예하였던 남지나파견군은 7월 23일에 대본영 직속이 되었다.

이듬해인 1941년 6월 28일에 대본영은 남지나파견군을 제23군으로 개편하고 초대 사령관으로 이마무라 히토시 중장을 임명했다.

태평양 전쟁 개전을 1달 앞둔 11월 6일에 이마무라 중장은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 공략을 책임진 제16군 사령관이 되었다.

이마무라 중장의 뒤를 이어 사카이 다카시 중장이 제23군 사령관이 되었으며 기병제1여단장 구리바야시 타다미치 소장이 참모장에 임명되었다.

제23군은 사카이 사령관 부임 당시 제18, 제38, 제51 및 제104사단의 4개 사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제23군 사령관 사카이 다카시 중장. http://en.wikipedia.org/wiki/Takashi_Sakai)

 

사카이 사령관은 부임과 동시에 홍콩 공략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대본영은 말레이 상륙 직후 해군의 지원 하에 제38사단으로 홍콩을 공격하여 열흘 안에 함락시키라고 명령했다.

 

홍콩 수비대에 캐나다 군이 증원되자 사카이 사령관은 대본영에 열흘 만에 홍콩을 함락시키라는 요구는 비현실적이라고 항의하는 동시에 증원을 요구했다.

대본영은 본토에 있던 위수연대(경비연대) 하나를 보내주었다.

위수연대를 공격 작전에 사용하기는 힘들었으나 대신 사카이 사령관은 제51사단에서 제66연대를 빼내어 홍콩전투에 참가시킬 수 있었다.

제66연대장 아라키 가츠토시 대좌의 이름을 따서 아라키 지대라고 이름붙인 제66연대는 전투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제38사단이 구룡반도를 점령한 후 방어를 맡았다.

덕분에 제38사단은 홍콩 섬 상륙에 모든 전력을 투입할 수 있었다.

 

일본군은 침공 몇 년전부터 홍콩에 간첩을 침투시켰는데 홍콩 경찰의 대응 능력이 미약했기 때문에 간첩들은 활발하게 활동했다.

실제로 일본군이 침공했을 때 사용한 지도는 홍콩 당국의 행정용 지도나 군대용 지도에 보기 편하도록 일본어로 몇몇 내용을 추가 인쇄한 것이었다.

일본군은 또한 홍콩의 조직폭력배들에게 자금과 무기를 대주면서 포섭하여 침공시 후방에서 소요를 일으키려 했으나 진책 소장의 대응에 막혀 실패했다.

 

침공계획은 3단계로 나뉘어져 있었다.

제1단계는 심천강을 건너 구룡반도를 점령하고 제2단계에서는 홍콩 섬 상륙을 준비할 것이었다.

제3단계는 홍콩 섬에 상륙하여 점령하는 것이었다.

 

 

(홍콩전투의 전개 과정.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hong_kong)

 

제1단계에서 제38사단은 크게 2개로 나뉘어 전진할 것이었다.

주력은 우익으로 제38사단의 보병단장 이토 다케오 소장이 지휘할 것이었다.

우익은 제228 및 제230연대와 산포대대, 대전차대대 및 공병대대 각 1개로 이루어져 산포연대의 지원을 받을 것이었다.

제228 및 제230연대의 제3대대는 우익의 예비대이며 화력 지원을 담당한 산포연대의 1개 대대는 보병과 동행할 것이었다.

 

좌익은 제229연대를 중심으로 소규모의 포병 및 공병 분견대가 딸려 있었다.

화력지원은 1개 산포연대, 1개 독립야포대대 및 1개 박격포대대가 담당할 것이었다.

 

우익은 대모산의 남서쪽을 통하여 영국군의 방어선을 공격할 것이었다.

좌익은 대모산과 대포 방면으로 남하하여 방어선을 공격할 것이었다. 

구룡반도의 점령은 1주일 내로 끝내게 되어 있었다.

 

구룡반도를 점령하면 제2단계로 들어가 3일 간 홍콩 섬 상륙을 준비하며 이 기간 동안 그린 섬과 스톤커터 섬을 점령하게 되어 있었다.

 

(홍콩 섬 상륙 및 전투.http://www.canadaatwar.ca/content-42/world-war-ii/the-battle-of-hong-kong/)

 

제3단계인 홍콩 섬 상륙은 침공 이후 열흘 째에 실시하게 되어 있었다.

상륙은 홍콩 섬의 북동해안인 백사만과 노스 포인트 사이에 실시하며 3개 연대가 모두 참가할 것이었다.

제230연대가 우익, 제228연대가 중앙, 제229연대가 좌익을 담당하며 일단 상륙하면 빅토리아 시티를 향하여 서쪽으로 진격하게 되어 있었다. 

상륙은 야간에 실시하며 다음날 아침까지는 빅토리아 피크에 도달하여 빅토리아 시티를 고립시키도록 되어 있었다.

각 연대는 2개 대대를 상륙에 동원하며 제3/228대대와 제1/230대대는 소속 연대의 예비대로, 제1/229대대는 사단예비대로 구룡에서 대기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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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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