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동부 솔로몬 해전(4) - 다나카 선단의 회항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주력함대 사이의 전투는 1942년 8월 24일 저녁에 끝났지만 전투 자체가 종결된 것은 아니었다.

24일 밤에 다나카 라이조 제독은 호위함대 중에서 구축함 5척(가게로, 무츠기, 야요이, 이소카제, 가와카제)을 파견하여 야간에 해병대의 교두보를 포격했고 중순양함 죠카이와 기누가사, 그리고 경순양함 유라에서 떠오른 수상정찰기들이 밤새 교두보 상공을 날아다니면서 소형 폭탄을 떨어뜨려 해병대의 신경을 긁었다.

참다못한 맹그럼 중령은 돈틀레스 8대를 이끌고 25일 새벽에 밤하늘로 날아올라 밝은 달빛에 의지하여 해상을 수색했다.

맹그럼 중령이 이끄는 돈틀레스들은 새벽 3시에 교두보를 포격하던 일본구축함들을 찾아내어 폭격을 가했다.

비록 폭탄은 빗나갔지만 야간이라 마음놓고 포격하던 일본구축함들은 갑작스런 폭격을 당하자 놀라서 달아났다.

 

8월 23일 오후에 일시 북쪽으로 반전했던 다나카 제독의 수송선단은 24일 정오 경에 다시 반전하여 남하하기 시작했다.

24일 하루 동안 일본함대와 미국제61기동부대는 처절한 혈투를 치렀지만 다나카 수송선단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무사히 남하를 계속했다.

그러나 25일 오전 9시 35분에 수송선단이 과달카날 북방 240km 지점에 도달했을 때 선단 상공에 일단의 돈틀레스들이 나타났다.

아침 일찍 헨더슨 비행장을 떠나 북쪽으로 일본항공모함을 찾아 나섰던 맹그럼 중령의 제232해병정찰폭격비행대대 소속 돈틀레스들이었다.

일본항공모함을 찾지 못해 허탕을 치고 돌아오던 중에 다나카 선단을 발견한 돈틀레스들은 꿩 대신 닭이라고 다나카 수송선단에게 달려들어 폭격을 가했다.

 

로렌스 발디누스 중위가 투하한 폭탄 1발이 다나카 제독의 기함인 경순양함 진츠의 제1번 포탑과 제2번 포탑 사이에 명중하여 갑판을 뚫고 탄약고 바로 부근에서 폭발하여 화재를 일으켰다.

이 폭발로 진츠의 통신실이 파괴되었고 사령관 다나카 제독이 잠깐 정신을 잃었으며 몇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진츠의 함장은 탄약고의 유폭을 막기 위하여 침수시키라는 명령을 내려야만 했다.

진츠는 결국 구축함 스즈카제의 호위를 받으면서 트럭으로 되돌아갔고 다나카 제독은 사령기를 구축함 가게로에 옮겨 달았다.

 

(일본해군의 경순양함 진츠.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크리스찬 핑크 소위가 조종하는 돈틀레스는 9,300톤급의 수송선 긴류마루에 폭탄을 명중시켰다.

긴류마루는 화재를 일으키면서 해상에 멈췄다.

다나카 제독은 구축함 무츠기에게 긴류마루에 탑승한 병력들과 승무원들을 구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본군도 칵터스 항공대의 활동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라바울을 출발한 1식 육상공격기 21대가 제로기 13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25일 정오에 헨더슨 비행장을 폭격했다. 

그러나 8,000m 의 고공에서 투하한 폭탄은 대부분 빗나갔고 해병대의 피해는 전사 4명과 활주로에 약간의 피해를 입은 것이 전부였다.

25일 밤에는 죠카이, 아오바, 기누가사, 후루다카 및 유라의 정찰기들이 밤새 해병대의 교두보를 폭격했다.

 

칵터스 항공대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다나카 수송선단은 여전히 과달카날을 향해 전진했다.

25일 오전 10시 15분에는 에스피리투산토를 출격한 B-17 중폭격기 8대가 수송선단의 상공에 나타났으나 하늘을 힐끗 올려본 무츠기의 함장 하타노 대좌는 무시하고 긴류마루의 병력과 승무원들을 구하러 갔다.   

B-17 이나 B-24 같은 미군 중폭격기들이 실시하는 고공수평폭격의 명중율이 보잘것 없었기 때문에 일본함정들은 미군의 중폭격기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만은 달랐다.

8대의 B-17 중폭격기들이 투하한 폭탄들은 정확하게 무츠기를 감싸면서 떨어졌고 무츠기는 3발의 명중탄을 얻어맞고 침몰했다. 

이로써 무츠기는 고공수평폭격에 의하여 격침된 최초의 일본구축함이 되었다. 

이때 구축함 우즈키도 지근탄에 의하여 피해를 입었다.

 

(B-17 중폭격기.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긴류마루는 무츠기가 격침된 후 화재로 탄약들이 유폭하면서 침몰했고 탑승 병력 중 700 명이 실종되었다.

다나카 제독은 항공지원이 없이 더 이상 과달카날에 접근하는 것은 자살행위일 뿐이라는 걸 깨닫고 쇼틀랜드로 회항했다.

이로써 동부 솔로몬 해전이 끝났다.

 

동부 솔로몬 해전은 전술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미해군의 판정승이었다.

일본해군은 경항공모함 류조, 구축함 무츠기, 수송선 긴류마루가 격침되고 항공기 59대를 상실했으며 수송선단이 과달카날에 도달하지 못함으로써 과호 작전이 완전히 실패했다.

반면 미해군은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가 중파되었으며 20대의 항공기를 상실했다.

 

상처입은 엔터프라이즈는 8월 25일에 중순양함 포틀랜드와 구축함 4척의 호위를 받으면서 통가타부를 거쳐 진주만으로 향했다.

엔터프라이즈는 9월 10일에 진주만에 입항하여 전면적인 수리를 받고 10월 23일에 남태평양으로 돌아왔다.

제16기동부대의 호위함정들 중 전함 노스캐롤라이나와 대공경순양함 애틀랜타 및 구축함 2척은 새러토가 중심의 제11기동부대에 편입되었고 엔터프라이즈의 함재기들도 대부분 남태평양에 남아서 지상 비행장을 기지로 삼아 활동했다.

 

플레처 제독은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사보 섬 해전으로 완전히 일본해군에게 넘어가 있던 과달카날 근해의 제해권을 부분적으로나마 되찾아 오는데 성공하여 과달카날에 대한 본격적인 보급과 증원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결국 과달카날 전투의 승리를 위한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이런 공적에도 불구하고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의 플레처 제독의 작전지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일본함대와의 결전을 앞두고 급유를 위하여 와스프를 남쪽으로 보내 버림으로써 쇼가쿠와 즈이가쿠에게 일격을 가할 기회를 놓친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Posted by 대사(P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