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동부 솔로몬 해전(2) - 류조 격침

 

1942년 8월 23일 아침, 엔터프라이즈를 떠난 정찰기가 일본잠수함 2척을 발견했다.

통상 일본잠수함은 대규모 수상함대의 전방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제61기동부대는 조만간 큰 전투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8월 23일 오전 9시 50분, 산타크루즈 제도의 은데니 섬에 정박한 수상기 모함 맥키낙에서 발진한 카탈리나 정찰비행정이 과달카날 북방해상에서 남진하는 다나카 제독의 수송선단을 발견하고 보고했다.

제61기동부대 사령관 플레처 제독은 참모들과의 회의를 거친 후 함대의 침로를 되돌려 북서쪽으로 나아간 다음 오후 2시 45분에 새러토가로부터 돈틀레스 31대와 아벤저 6대로 이루어진 공격대를 발진시켰다.

오후 4시 15분에는 헨더슨 비행장에서도 23대의 항공기가 다나카 수송선단을 노리고 출격했다.

그러나 다나카 제독은 자신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오후 1시에 북서쪽으로 변침해 버렸다.

따라서 새러토가와 헨더슨 비행장을 떠난 공격대는 모두 다나카 선단을 찾는데 실패했다.

새러토가의 함재기들은 모함으로 돌아가는 대신 헨더슨 비행장으로 향했다.

 

8월 23일 오후 4시 경에 플레처 제독은 일본항공모함들의 위치에 관하여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미군의 정찰기들은 이 시각까지 일본항공모함을 찾지 못했고 8월 1일에 일본해군이 난수표를 바꾼 이래 아직 일본해군의 암호를 완전하게 해독하지 못하던 진주만의 암호해독반은 일본항모들이 트럭 북방 해상에 있는 것 같다는 그릇된 정보를 전해왔다.   

 

플레처 제독은 당분간 전투가 없을 것으로 믿고 23일 오후 6시에 구축함들의 연료를 보충하도록 와스프 중심의 제18기동부대를 남쪽으로 보내어 해상급유를 받도록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시 구축함들의 전투보고서에 따르면 연료보유량은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즉 제18기동부대의 구축함 7척은 23일 정오 현재 240톤에서 370톤 정도의 연료를 보유하여 평균 300톤을 보유하고 있었다.

구축함의 하루 연료 사용량이 40톤에서 80톤 정도란 걸 생각해 보면 가장 연료가 적은 구축함도 최소한 3일 연속 격렬한 전투를 치를만한 연료를 가지고 있었다. 

이 그릇된 결정 때문에 제61기동부대는 결정적인 전투를 앞두고 3척의 항공모함 중 1척이 전열에서 탈락했다.

 

이제 2척의 항공모함으로 줄어든 제61기동부대에게 23일 밤은 조용히 지나갔다.

다음날인 8월 24일에는 산호해 해전, 미드웨이 해전에 이어 사상 3번째의 함대항공전이 벌어질 것이었다.

 

(동부 솔로몬 해전 상황도)

 

트럭 환초를 출발하여 남진하던 일본함대는 23일 오후 6시에 일시적으로 북서쪽으로 변침했다.

24일 오전 4시, 하라 소장이 지휘하는 류조 중심의 견제부대가 나구모 제독의 공격부대에서 분리되어 과달카날을 향하여 남진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주력함대는 24일 오전 6시에 다시 변침하여 제61기동부대와의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했다.

 

8월 24일 아침이 되자 전날 헨더슨 비행장에 착륙했던 새러토가의 함재기들이 모함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CAP 임무를 맡고 있던 와일드캣 4대가 새러토가 전방 30km 까지 접근한 일본군의 2식 비행정 1대를 격추했다.

 

(일본해군의 가와니시 H8K 2식 비행정.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8월 24일 오전 9시 5분에 은데니 섬을 떠난 카탈리나 정찰비행정 1대가 말라이타 섬 북쪽 350km 지점, 제61기동부대로부터 450km 떨어진 지점에서 류조와 그 호위함들을 발견했다.

11시 28분에는 역시 은데니 섬에서 발진한 카탈리나 정찰비행정이 제61기동부대로부터 380km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류조와 그 호위함들을 발견했다.

일본항공모함이 출현하자 플레처 제독은 와스프를 남하시킨 결정을 후회했으나 물러서지 않고 2척의 항공모함만으로 전투를 치르기로 결심했다.

플레처 제독은 지금 발견된 일본항공모함은 일본함대의 일부일 뿐이며 최소한 1척 아니면 2척의 항공모함이 더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제16기동부대의 킨케이드 소장에게 북서쪽 방면으로 400km 거리를 정찰하라고 명령했다.

24일 12시 29분에 돈틀레스 16대와 아벤저 7대가 폭탄과 어뢰를 장비한 채로 정찰비행을 위하여 엔터프라이즈의 갑판을 떠났다.

 

한편 류조는 아군 정찰기로부터 미국항공모함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오지 않자 24일 오후 1시에 과달카날 북방해상에서 예정대로 제로기 15대와 99식 함상폭격기 6대를 헨더슨 비행장 폭격에 내보냈다.

이 공격대는 과달카날 섬 부근에서 라바울에서 출격한 1식 육상공격기들과 합류하여 헨더슨 비행장을 폭격했다.

그러나 일본항공기의 접근을 미리 알고 있던 칵터스 항공대는 제223해병전투비행대대 소속의 와일드캣 12대를 내보내어 요격했다.

이 공습에서 일본군은 제로기 6대와 1식 육상공격기 9대를 잃었으며 99식 함상폭격기 6대는 전멸했다.

제232해병전투비행대대는 4대의 와일드캣을 상실했고 헨더슨 비행장의 피해는 가벼웠다.

 

24일 오후1시 45분, 플레처 제독은 결단을 내려서 제3비행전대장 펠트 중령의 지휘 하에 돈틀레스 30대와 아벤저 8대를 류조를 향하여 출격시켰다.

 

45분 후인 오후 2시 30분에 엔터프라이즈를 떠난 돈틀레스 2대와 산타크루즈 제도에서 이륙한 카탈리나 정찰비해정 1대가 거의 동시에 370km 거리에서 일본항공모함 쇼가쿠와 즈이가쿠를 발견했다.

2대의 돈틀레스는 폭격을 가해서 쇼가쿠에 지근탄 1발을 기록했다. 

다시 10분 후인 2시 40분에는 다른 돈틀레스 2대가 360km 거리에서 아베 제독의 전위부대를 발견하고 역시 폭격을 가했으나 명중시키지 못헀다.

 

엔터프라이즈를 떠난 아벤저 7대 중 6대는 류조 중심의 견제부대를 발견하고 공격을 가했으나 실패했다.

4대의 아벤저가 류조를 노리고 달려들었으나 2대는 어뢰를 발사해보기도 전에 제로기에 의하여 쫓겨났고 2대는 어뢰발사에 성공했으나 명중시키지 못했다.

중순양함 도네를 노리고 달려든 아벤저 2대도 역시 제로기에 의하여 어뢰를 발사해 보지도 못하고 쫓겨났으며 1대는 격추당했다.

 

오후 2시를 넘어가면서 통신불량 문제가 제61기동부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엔터프라이즈를 출격한 돈틀레스와 카탈리나 정찰비행정이 2시 30분에 발신한 쇼가쿠 및 즈이가쿠 발견보고는 새러토가에서는 수신되었으나 정작 출격시킬 예비대를 가진 엔터프라이즈에서는 수신되지 않았다.

플레처 제독은 류조를 향해 날아가는 펠트 공격대 중에서 돈틀레스 1개 비행대대를 새로 발견된 일본항공모함 쪽으로 돌리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펠트 공격대와 통신이 되지 않았다.

 

펠트 공격대는 일본군의 강력한 항공모함부대가 새로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로 24일 오후 3시 50분에 류조 상공에 도달했다.

펠트 중령은 모든 공격력을 항공모함에 집중시키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에 따라 30대의 돈틀레스들이 4,300m 상공에서 급강하하면서 류조를 노리고 30발의 450kg 짜리 폭탄을 투하했다. 

앞서 엔터프라이즈를 출격한 뇌격기들의 공격을 무사히 막아낸 제로기 9대가 다시 요격했으나 이번에는 상대가 너무 많았다.

류조는 교묘한 기동으로 처음 몇 발의 폭탄은 무사히 피했으나 결국 4발을 얻어맞았다.

 

돈틀레스들이 급강하 폭격을 하는 동안 8대의 아벤저들은 저공으로 내려와 어뢰공격을 가하였다.

아벤저들은 4대씩 2개 편대로 나뉘어 류조의 함수 쪽에서 접근하다가 거리가 800m 에 이르자 60m 상공에서 일제히 어뢰를 발사하고는 이탈했다.

이 어뢰들 중 1대가 명중했다.

 

불과 3달 전인 미드웨이 해전 당시 투하고도가 15m 불과했던 미해군의 항공어뢰는 그 동안의 개량으로 투하고도가 4배나 완화된 것이었다.

이후로도 미해군의 항공어뢰는 뇌격기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좀 더 빠른 속력으로 좀 더 높은 곳에서 투하할 수 있도록 투하조건의 완화에 중점을 두고 지속적으로 개량하게 된다. 

 

전투 개시 10분 만에 450kg 짜리 대형폭탄 4개와 어뢰 1발에 명중당한 류조는 화염에 휩싸인 채 우현으로 20도나 기울면서 모든 기능을 상실했다.

류조의 함장은 퇴함명령을 내렸다.

류조는 1942년 8월 24일 오후 8시, 과달카날 북방 320km 해상에서 전복, 침몰했으며 중순양함 도네를 비롯한 호위함정들이 생존자를 수용했다.

승무원 924명 중에서 100여명이 사망했고 류조의 함재기들은 모두 부카 기지로 날아갔다.

류조를 공격한 펠트 공격대는 1대의 희생도 없이 전원 살아 돌아왔다.

 

제61기동부대는 류조를 격침함으로써 서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이제 일본의 정규함공모함인 쇼가쿠와 즈이가쿠의 공격을 막아내어야 할 입장이었다.

8월 24일 오후 2시 5분에 일본군의 수상정찰기 1대가 엔터프라이즈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했다가 격추되었다.

이로써 일본함대가 제61기동부대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었다.

플레처 제독과 제61기동부대의 승무원들은 모두 다 숨을 죽이고 일본기들의 내습을 기다렸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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