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동부 솔로몬 해전(3) - 엔터프라이즈의 피격

 

류조의 피격소식을 들은 나구모 제독은 자신의 계획이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이제 미국함대가 미끼를 물었으니 공격대를 보내어 더 큰 대가를 받아내는 일만 남았다.

8월 24일 오후 2시 5분, 치쿠마를 떠난 수상정찰기 1대가 미국 항공모함기동부대의 위치를 알려주고는 격추당했다.

오후 3시 7분에 쇼가쿠로부터 제로기 4대와 99식 급강하폭격기 18대, 즈이가쿠로부터 제로기 6대와 99식 급강하폭격기 9대가 발진했고, 오후 4시에 쇼가쿠로부터 제로기 3대와 99식 급강하폭격기 9대, 즈이가쿠로부터 제로기 6대와 99식 급강하폭격기 18대로 이루어진 제2차 공격대가 출격했다.

 

(동부솔로몬 해전 상황도)

 

새러토가 중심의 제11기동부대와 엔터프라이즈 중심의 제16기동부대는 서로 15km 정도 떨어져서 각자 원형진을 구성하고 있었다.

제16기동부대는 가운데 엔터프라이즈를 중심으로 순양함 및 구축함들이 반지름 약 1,600m 에서 1,800m 크기의 대공원형진을 구성하고 있었으며, 전함 노스캐롤라이나는 엔터프라이즈 후방 약 2,300m 지점에 자리잡고 있었다.

 

(동부 솔로몬 해전 당시 엔터프라이즈 그룹의 대공원형진)

 

24일 오후 4시, 플레처 제독은 일본함대에 보다 가까이 있는 엔터프라이즈에게 제61기동부대 전체의 전투기 유도 임무를 맡겼다.

2분 뒤인 오후 4시 2분에 엔터프라이즈의 레이더가 거리 140km, 방위 320도에서 접근 중인 일본기들을 발견했다.

전투공중초계(CAP = Combat Air Patrol)중이던 와일드캣에 더하여 항공모함의 갑판에서 대기 중이던 와일드캣들이 긴급발진하여 제61기동부대의 가용한 53대의 와일드캣 중 절반 정도가 적기가 발견된 방향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산호해 해전과 미드웨이 해전에서 렉싱턴과 요크타운을 잃었던 플레처 제독은 적기의 공습을 막아내려면 많은 숫자의 와일드캣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와일드캣을 최대한 모아서  53대라는 상당한 숫자의 와일드캣을 요격에 동원할 수 있었다.

 

엔터프라이즈에 남아있던 돈틀레스 11대와 아벤저 7대, 그리고 새러토가에 남아있던 돈틀레스 2대와 아벤저 5대도 즉시 일본함대를 찾아 모함의 비행갑판을 떠났다.

 

일본기가 발견된 지 2분 후인 , 오후 4시 4분에 엔터프라이즈의 레이더가 서북서 방향, 거리 70km 에서 접근 중인 정체불명의 항공기들을 발견했다.

엔터프라이즈의 전투기 유도장교인 레너드 도우 소령과 헨리 로우 소령은 고민 끝에 절반의 와일드캣을 이 항공기들에게 돌렸다.

불행하게도 이 항공기들은 정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군 항공기들이었다.

당시의 초보적인 피아식별장치의 수준으로는 레이더 상에 나타난 항공기들을 식별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동안 처음에 접촉했던 일본기들의 항적이 레이더에서 사라졌다가 4시 19분에야 다시 나타났다.

전투기 유도장교들은 일본기의 고도가 약 3,600m 라고 추정했다.

오후 4시 25분, 제61기동부대의 북서쪽을 담당하던 와일드캣들이 육안으로 일본기들을 발견하고 경보를 발했다.

 

이 순간부터 또다른 문제인 통신장애가 전투기 유도장교들을 괴롭혔다.

53대에 달하는 전투공중초계 세력과 대잠작전 중인 몇 대의 돈틀레스, 그리고 정찰에서 돌아오는 돈틀레스 및 아벤저들이 모두 단 하나의 주파수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유일한 주파수는 일본기를 발견한 와일드캣의 조종사들이 내지르는 "탤리호!!"(Tally-hos!!, 적기를 발견했을때 쓰는 용어) 소리와 이어서 터져나오는 온갖 욕설과 흥분해서 조종사들끼리 떠들어대는 잡담 등으로 순식간에 통신불능상태에 빠졌다.

전투기 유도장교들이 그 난장판 속을 비집고 들어가 어떻게든 다른 구역의 와일드캣 조종사들에게 일본기들의 위치와 고도를 알려주어 일본기가 발견된 방향으로 유도하려고 기를 썼다.

 

사실 비행 중에 조종사들끼리 하는 대화는 대부분 잡담 수준으로 전술적 가치는 거의 없다.

미해군은 함재기 조종사들에게 비행 중 의미없는 잡담을 하지 말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했고, 그 결과 1944년이 되면 잡담의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따라서, 전투기 유도장교들이 보다 원활해진 통신망을 활용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CAP 세력들을 적시에 필요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게 됨으로써 CAP 의 효율이 크게 높아졌다. 

함재기에 의한 함대방공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인 1944년 6월의 필리핀해 해전같은 경우 동부 솔로몬 해전처럼 전투기 조종사들 간의 잡담으로 통신망이 마비되었다면 결코 칠면조 쏘기 라고 부를 정도의 혁혁한 전과를 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교육에도 불구하고 조종사들의 잡담을 완전히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전투기 조종석에 앉은 조종사는 외로운 존재이며 고립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같은 처지의 동료들과 잡담이라도 나누고 싶어하는 본능적 욕구를 교육만으로 근절할 수는 없었다.

 

엔터프라이즈의 전투기 유도장교들은 일본기들이 흩어지기 전에 최대한 많은 전투기들을 그 지역으로 집결시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오후 4시 29분, 엔터프라이즈 전방 40km 지점까지 접근한 일본기들이 제16기동부대를 발견하고 소규모 편대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로써 전투기 유도장교의 역할은 끝났다.

이후 최초의 일본기가 제16기동부대 상공에 도달할때까지 12분간 만사는 전투기 조종사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막으려는 자와 뚫고 지나가려는 자와의 싸움에서 일단은 일본기들이 승리했다.

99식 급강하폭격기들을 호위하던 10대의 제로기는 와일드캣에게 과감하게 달려들어 싸움을 걸었고 그 와중에 27대의 99식 급강하폭격기 중 25대가 와일드캣의 방공망을 무사히 통과하여 제16기동부대 상공에 도달했다.

치열한 대공포화를 뚫고 급강하한 일본기들은 모든 공격력을 엔터프라이즈에게 집중시켰다.

 

오후 4시 41분부터 약 7초 간격으로 20발이 넘는 폭탄이 엔터프라이즈를 노리고 떨어졌다.

함장인 데이비스 대령은 교묘한 조함으로 첫 2분간 15발 이상을 무사히 피했다.

99식 급강하 폭격기 1대가 폭탄을 떨구기도 전에 대공포화에 피격되자 엔터프라이즈를 노리고 돌격해 왔다.

 

(피격되어 불을 뿜으면서 엔터프라이즈를 노리고 달려드는 99식 급강하폭격기)

 

이 일본기는 엔터프라이즈의 우현에서 불과 10m 떨어진 곳에 추락하면서 폭발했다.

이 충격으로 20mm 대공포좌의 포수 1명이 5m 나 날아가서 다른 대공포좌에 떨어졌다.

 

(엔터프라이즈의 우현에서 불과 10m 떨어진 해면에 추락한 일본기가 일으킨 커다란 화염과 물기둥)

 

폭격이 시작된지 2분 후인 오후 4시 43분에 1대의 99식 급강하 폭격기가 450m 높이에서 70도 각도로 투하한 250kg 폭탄 1발이 후방갑판의

제3번 엘리베이터 전방 모서리 부근에 명중했다.

이 폭탄은 12m 를 뚫고 내려가 부사관 거주 지역의 제2갑판과 제3갑판 사이에서 폭발하여 엘리베이터 운용팀, 탄약관리요원들과 손상관리반 요원들 35명이 즉사했다.

폭발의 충격으로 우현 수선 하에 직경 1.8m 구멍이 뚫렸고 거기로 쏟아져들어온 바닷물 때문에 배가 3도나 우측으로 기울었으며 폭발의 충격이 2만톤짜리 배를 흔들어 잠시동안 사람이 서있지 못할 정도였다.

격납고 갑판에는 직경 5m 짜리 구멍이 뚫렸고 구멍의 가장자리는 60cm 나 위쪽으로 우그러졌다.

 

(엔터프라이즈의 후방갑판에 일본군의 폭탄이 명중하는 순간. CA-33 포틀랜드에서 찍은 사진이다.)

 

첫 번째 폭탄이 명중한지 30초 뒤에 첫번째 폭탄이 명중한 자리에서 5m 정도 후방 오른쪽에 두번째 폭탄이 떨어졌다.

이 폭탄은 2.4m 깊이에서 폭발하면서 우현 고물 쪽에 있던 제5번과 제7번 5인치 포대에 쌓여있던 장약 40개를 유폭시켰다.

이 폭발로 38명이 사망했는데 그중의 10명은 새까맣게 타서 신원확인이 불가능했다.

 

첫번째 폭탄이 떨어진 지 2분후인 4시 45분에 3번째 폭탄이 제2번 엘리베이터 전방의 비행갑판에 명중했다.

450m 고도에서 60도 각도로 투하된 이 폭탄은 천만다행으로 지연신관이 오작동하여 명중과 동시에 폭발했다.

이 폭탄은 비행갑판에 직경 3m 짜리 구멍을 내고 제2번 엘리베이터와 어레스팅 기어를 망가뜨렸으며 1명의 사망자를 기록했으나 앞의 두 폭탄에 비하면 피해는 가벼운 수준이었다.

 

(세번째 폭탄의 폭발 장면. 이 장면은 원래 이 해전에서 전사한 로버트 리드 하사가 전사하는 순간에 찍은 사진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사실은 마리온 릴리 하사가 찍은 사진이다. 리드 하사는 1분 30초 전에 명중한 두번째 폭탄에 의하여 전사했다. 릴리 하사의 사진기는 이 장면을 찍는 순간 망가졌으나 필름은 살아남았고 릴리 하사도 무사했다.)

 

3발의 명중탄을 맞은 엔터프라이즈에서는 74명이 전사하고 95명이 부상을 입었다. 

 

폭격을 마친 일본의 급강하폭격기들은 이탈하는 과정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와일드캣 편대장인 도널드 러니언 준위는 제로기 2대와 99식 급강하 폭격기 3대를 격추했으며 그의 부하들이 99식 급강하폭격기 4대를 더 격추했다.

 

돈틀레스도 격추 대열에 동참했다.

류조를 격침하고 돌아오던 새러토가의 제3정찰비행대대장 루이스 컨 소령은 오후 5시 10분에 전방에서 일본군의 99식 급강하폭격기 4대가 150m 고도로 비행 중인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을 따르던 돈틀레스 9대와 함께 마치 퍼레이드 하듯이 나란히 일자대형을 만들고는 일본기들의 후방에서 몰래 접근해 갔다.

일본기들이 자신들의 후방에서 다가오는 위험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일렬로 나란히 늘어선 10대의 돈틀레스가 동시에 쏘아대는 기관총탄을 뒤집어 쓴 3대의 99식 급강하폭격기가 추락했고 1대는 검은 연기를 끌면서 도망쳤다.

돈틀레스를 타고 대잠작전을 수행 중이던 하어드 버넷 소위도 저공비행 중인 일본군의 99식 급강하폭격기 1대를 발견하고 공중전을 벌여 격추했다.

 

일본기들 중 6대의 제로기와 18대의 99식 급강하 폭격기가 격추당했다.

 

엔터프라이즈에서는 승무원들이 함을 구하기 위하여 활동을 개시했다.

화재가 발생한 구역은 우선 부상자들을 후송시킨 다음 폐쇄하고 소화기를 든 승무원들이 진화에 나섰다.

수선하 구역에 난 구멍은 매트리스로 일단 막았고 목수들은 구멍난 비행갑판을 보수했다.

손상관리반장인 허셀 스미스 소령의 지휘 하에 평소 맹렬하게 훈련해 온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들은 실전에서 처음 당하는 피격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여 폭탄을 맞은 이후 1시간 이내에 화재를 진압하고 수선하 구멍을 막고 비행갑판을 보수했다.

그리하여 엔터프라이즈는 오후 5시 49분부터 24노트의 속력으로 함재기의 이착륙을 실시할 수 있었다.

 

진짜 위기는 그 다음에 찾아왔다.

첫번째 폭탄이 떨어졌을 때 함정의 후방에 있는 조타기계실과 연결된 환풍기 배관이 찢어졌다.

두번째 폭탄으로 인하여 화재가 일어나자 불타는 연기와 함께 엄청난 열기가 찢어진 환풍기 배관을 통하여 조타기계실로 흘러들었다.

조타기계실에 순식간에 검은 연기가 들어차면서 실내온도가 섭씨 80도까지 상승하자 조타기계실 내의 인원들은 긴급대피했다.

 

이제 화재가 잡히고 조타기계실로 돌아온 승무원들이 실내의 연기를 배출하기 위하여 환풍기를 가동시켰다.

그러자 찢어진 환풍기 배관을 타고 엄청난 양의 물과 소화액이 조타기계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혼비백산한 승무원들은 실내가 완전히 잠기기 전에 극적으로 탈출했다.

사상자가 없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러나 오후 6시 21분에 조타기계실이 침수되면서 엔터프라이즈의 키가 우현 20도로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함장 데이비스 대령이 우현 프러펠러를 전속전진시키고, 좌현 프러펠러를 전속 후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직진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조향기능을 상실한 엔터프라이즈는 하마터면 구축함 발치와 충돌할 뻔했다.

이제 엔터프라이즈는 오른쪽으로 원을 그리며 돌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상태에서 공습을 당하면 엔터프라이즈는 회피운동도 못한 채 꼼짝없이 폭탄이나 어뢰를 얻어맞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태는 독일전함 비스마르크가 최후를 맞을 때와 비슷했다.

 

실제로 즈이가쿠를 출발한 일본의 제2차 공격대는 엔터프라이즈를 향하여 똑바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사보 섬 해전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일본해군의 손을 들어주었던 행운의 여신은 이번에는 마음을 바꾸어 노골적으로 엔터프라이즈를 편들었다.

엔터프라이즈를 향하여 직진하던 일본군의 제2차 공격대는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중간에 침로를 40도 가량 남쪽으로 꺾어서 엔터프라이즈의 남쪽 80km 지점까지 날아갔다.

엔터프라이즈의 레이더는 남쪽 80km 지점에서 제2차 공격대를 발견했다.

만일 이 상태에서 일본기들이 바로 북상한다면 곧 엔터프라이즈 상공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연료가 달랑거리던 일본의 제2차 공격대는 모함으로 향하는 가장 가까운 직선거리를 따라 북서쪽으로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동안 윌리엄 스미스 준위가 2번의 실패 끝에 보조모터의 구동에 성공하여 엔터프라이즈는 조타기계실이 침수된지 38분 만인 오후 6시 51분에 조향기능을 회복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났다. 

 

한편 일본군의 공습 당시 엔터프라이즈를 떠났던 돈틀레스 11대와 아벤저 7대는 일본함대를 찾는데 실패했다.

아벤저 7대는 오후 8시에 무사히 엔터프라이즈에 돌아왔지만 어두운 밤바다에서 모함을 찾지 못한 돈틀레스 11대는 헨더슨 비행장에 착륙하여 해병대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반데그리프트 소장은 뜻하지 않게 굴러들어온 해군 소속의 돈틀레스 11대를 칵터스 항공대에 편입시켜 달라고 요구했고 모함인 엔터프라이즈가 피해를 입었으므로 해군 측은 요청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돈틀레스들은 9월 27일까지 1달 동안 칵터스 항공대의 일부로서 헨더슨 비행장을 기지로 삼아 활동하게 되었다.

 

새러토가를 떠난 돈틀레스 2대와 아벤저 5대는 오후 5시 40분에 전속력으로 남하하던 곤도 제독의 지원부대를 만나서 수상기 모함 치토세를 공격했다.

치토세는 아벤저들이 발사한 어뢰 5발은 겨우 피했으나 함이 최대한 회전한 상태에서 돈틀레스 2대가 떨어뜨린 폭탄이 연거푸 명중하여 좌현 기관실이 침수되면서 함체가 순식간에 좌현으로 7도나 기울었다.

치토세의 기울기는 한때 30도에 이르렀으나 필사적인 보수작업 끝에 침몰을 면하고 트럭으로 돌아갔다.

(일본해군의 수상기모함 치토세.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새러토가의 함재기들은 귀함 도중 2대의 아벤저가 길을 잃어 산크리스토발 섬 근해에서 해상에 불시착했으나 승무원은 모두 구조되었다.

나머지 돈틀레스 2대와 아벤저 3대는 오후 7시 30분에 안전하게 새러토가에 착함했다.

 

엔터프라이즈의 조향기능이 회복되자 플레처 제독은 철수를 명했다.

 

한편 일본함대에서도 나구모 제독의 공격부대는 철수했으나 곤도 제독은 자신의 강력한 수상함대를 사용하여 야전을 기도했다.

오후 4시 30분에 아베 제독의 전위부대를 지원부대에 통합한 곤도 제독은 전속력으로 남하했다.

오후 5시 40분에 새러토가의 함재기에 의하여 치토세가 중파되어 트럭으로 돌아갔으나 나머지 함정들은 남하를 계속했다.

전함 2척과 순양함 10척을 기간으로 하는 강력한 일본의 수상함대는 순양함에서 연거푸 정찰기를 띄워 미국함대의 흔적을 찾았으나 8월 24일 밤 11시 30분까지 접촉하는데 실패했다.

항공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자정을 넘겨서까지 추격하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결국 자정이 막 지난 8월 25일 새벽에 곤도 제독은 추격을 포기하고 28노트의 속도로 북상하여 철수했다.

 

곤도 제독의 철수는 현명한 결정이었다.

당시 남쪽에서는 급유를 마친 와스프가 북상하고 있었다.

만일 철수결정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일본함대는 25일 오전에 와스프가 보유한 80대의 함재기에 의하여 치명적인 추가 피해를 입었을 것이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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