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츠네이로대대 전멸
롱고스카와얀곶에서 소탕전이 벌어지는 사이 북쪽으로 11km 떨어진 퀴나완곶에서도 츠네이로 중좌가 지휘하는 보병제20연대제2대대 주력에 대한 소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본군의 바탄상륙.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PI/USA-P-PI-17.html#17-1 P.297)
1월 27일까지 퀴나완곶의 소탕전은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일본군의 숫자는 600명인데 비하여 소탕에 나선 피어스 준장이 동원할 수 있었던 병력은 제5추격사령부, 제21 및 제34추격비행대대, 제71사단사령부(PA), 제1필리핀경찰연대제3대대, 그리고 제803공병연대A중대(US) 소속의 잡동사니 병력 550명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군을 소탕하려면 정예보병이 필요했으므로 27일 저녁에 웨인라이트 장군은 제45보병연대제3대대(PS)의 투입을 결정했다.
(퀴나완곶.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PI/USA-P-PI-17.html#17-2 P. 303)
28일 오전 8시 30분에 더들리 스트리클러 소령이 지휘하는 완편된 스카우트 대대인 제45보병연대제3대대의 병력 500명이 전선에 도착했다. 이들의 도착에 따라 150명의 병력을 가진 제5추격사령부를 제외한 기존 병력들은 철수했다.
스트리클러 소령은 820m 에 걸친 전선에 3개 중대를 모두 배치했다. 각 중대에는 1개 기관총소대가 배속되어 있었으며 스카우트 대대의 측면에는 제5추격사령부 병력이 배치되었다.
28일 공격은 실패였다. 시야가 막힌 정글에서는 미리 진지를 만들고 병력을 배치한 일본군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정글 속으로 진격한 스카우트 병사들은 사격을 받으면서도 적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28일 오후 5시에 전진을 멈추었을 때 스카우트 대대는 해안에서만 약 90m 를 전진했을 뿐 중앙에서는 불과 10m 정도 전진하는데 그쳤다. 스트리클러 소령이 증원을 요청하자 제57보병연대 B중대(PS)가 배속되었다. B중대의 2개 소대는 대대 우익에 투입되었고 1개 소대는 예비대가 되었다.
29일 공격에는 B중대도 투입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스카우트들은 특히 중앙에서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거의 전진하지 못했다.
30일과 31일 공격도 지지부진했다. 이틀 동안 스카우트 대대는 큰 희생을 치르면서 일본군 방어선을 약간 밀어내는데 그쳤다.
정글은 방어자에게 유리했다. 밀생한 관목이 진격하는 병사의 다리에 걸렸다. 병사들은 쉴새없이 정글도로 얼굴과 다리를 가로막는 덩굴들을 자르며 전진해야 했는데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잘린 덩굴이 뒤따르던 병사의 얼굴이나 몸통을 채찍처럼 후려쳤다. 사방이 벌레 천지였으며 숨막힐 듯이 더웠다. 이런 상황에서는 적의 저항이 없어도 전진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또한 정글은 시야가 제한되어 적의 기관총 진지를 3m 앞에서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모두가 공격자에게는 악몽이었다.
2월 1일에는 맹렬한 박격포 사격을 가한 후 공격을 실시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이날 대대장 스트리클러 소령은 전선을 시찰하다가 실종되었고 대대부관(battalion adjutant) 클리프턴 크룸 대위가 뒤를 이었다. 이 시점에서 스카우트 대대에는 절반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나머지 병사들도 수면부족과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2일에 크룸 대위는 공세를 실시하지 않고 병사들을 휴식시키면서 전차지원을 요청했다. 1월 31일에 내려진 맥아더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서부지구사령관 피어스 준장은 전차단장 위버 준장으로부터 전차대대 2개로 이루어진 전차연대를 넘겨받아 보유하고 있었다. 2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경전차 3대로 이루어진 제192전차대대C중대의 1개 소대가 스카우트 대대에 도착했다. 2일 오후 늦게 제45보병연대의 부연대장인 도널드 힐튼 대령이 전선에 도착하여 크룸 대위로부터 지휘권을 넘겨받았다.
3일 공격은 전차의 지원을 받아 실시되었으나 역시 실패했다. 쓰러진 나무와 그루터기가 전차의 전진을 막았으며 통신불량과 통제의 결여로 보병과 전차의 협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후 5시에 공격을 중단했을 때 전선은 거의 변동이 없었다. 저녁에 다이에스 대위가 제21추격비행대대의 병력 70명을 이끌고 전선에 도착했다. 다이에스 대위는 1주일 동안 스카우트 대대가 절반 이상의 사상자를 기록했는데도 자신이 떠날 때보다 전선이 불과 50m 정도 전진한 것을 보고 놀랐다.
4일 공격을 앞두고 힐튼 대령은 꼼꼼하게 준비했다. 우선 전차 2대와 무선지휘차를 추가로 배속받았으며 전차마다 워키토키를 지급했다.
4일 아침에 전투가 시작되자 힐튼 대령의 준비가 효과를 나타내면서 승부를 결정지었다. 보병의 요구사항을 전달받은 무선지휘차의 명령에 따라 전차들은 보병의 진격을 가로막는 일본군 방어거점을 때려부수고 기관총탄을 흩뿌려 일본군이 머리를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전차의 지원을 받은 스카우트 대대는 착실하게 전진하여 오후가 되자 퀴나완곶의 끝에서 불과 50m 떨어진 지점까지 일본군을 몰아 붙였다. 곶의 끝에서 180m 떨어진 지점에는 언덕이 있어서 이제 스카우트 대대는 처음으로 일본군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전멸의 위기에 처하자 일본군 일부는 절망하여 울부짖으면서 옷을 찢은 다음 절벽에서 뛰어내렸으나 대부분은 포기하지 않고 쏟아지는 기관총탄에 큰 피해를 입으면서 절벽을 기어 내려가 해안동굴에 숨었다.
5일 아침에 스카우트 대대는 퀴나완곶의 끝에 도달했으나 아직 절벽 아래의 해안동굴에 숨어있는 일본군을 처리해야 하는 위험하고 까다로운 임무가 남아 있었다. 몇몇 병사가 멋모르고 항복을 권유하러 절벽을 내려가 해안동굴에 접근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웨인라이트 장군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저항하는 일본군을 혐오하면서 전멸시키기로 결심했다.
6일 아침부터 북부루손군 공병대장 스케리 대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71공병대대(PA)가 해안동굴 소탕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한신관을 장착한 50파운드(23kg)짜리 다이너마이트 통을 밧줄로 동굴 입구에 내려 폭발시키는 방법을 썼으나 절벽 끝에서 밧줄을 내리던 스카우트 공병하사가 일본군의 사격으로 전사하자 다이너마이트 4개를 묶어 수류탄을 만든 다음 30초 시한신관을 달아 좀 더 안전한 곳에서 던지는 방법으로 바꾸었다. 공병대는 이 방법으로 살아남은 일본군의 대부분인 약 50명을 커다란 동굴로 몰아넣은 다음 다이너마이트로 무너뜨렸다. 이로써 끝난 것처럼 보였다.
7일 하루 동안 마음놓고 돌아다니던 몇몇 병사가 사격을 당하는 일이 생기면서 아직 소수의 일본군이 절벽 아래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8일 아침부터 미-필리핀군은 마지막 소탕을 실시했다. 해군에서 37mm 포와 기관총을 장비한 무장모터런치 2척과 구명정(whaleboat) 2척을 보내주었다. 굿올 해군소령이 지휘하는 이 소함대가 오전 8시에 퀴나완곶에 도착하자 다이에스 대위가 지휘하는 제21추격비행대대 병력 20명이 2척의 구명정에 분승했다. 무장런치가 해안에 사격을 가하는 동안 구명정 1척은 곶의 북쪽에, 나머지 1척은 남쪽에 접안하여 병력을 상륙시켰다. 제21추격비행대대 병사들은 북쪽과 남쪽에서 동시에 곶의 끝을 향하여 진격했으며 절벽 위에서는 스카우트 대대가 엄호했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몇명의 일본군을 사살하면서 서로를 향하여 전진한 제21추격비행대대 병사들이 곶의 끝에서 만나면서 소탕전이 끝났다.
일본군은 이날 3대의 급강하폭격기를 보내어 굿올 소령의 소함대를 공습했다. 다행히 폭탄은 피했으나 기총소사로 굿올 소령이 중상을 입는 등 몇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로써 보병제20연대제2대대 기간의 츠네이로대대 900명은 전멸했다. 300명은 롱고스카와얀곶에서, 그리고 600명은 퀴나완곶에서 최후를 맞았다.
댓가는 컸다. 롱고스카와얀곶 소탕전에서 발생한 전사 22명, 부상 66명의 피해는 퀴나완곶 소탕전의 1/5도 되지 않았다. 28일부터 소탕전의 주역이었던 제45보병연대제3대대는 정원 500명 중에서 전사 74명, 부상 234명으로 60% 가 넘는 사상자를 기록했다. 29일에 증원된 또다른 스카우트 부대인 제57보병연대 B중대는 40명의 사상자를 기록했다. 다른 부대의 사상자를 포함하면 퀴나완곶 소탕전의 사상자는 500명 가까이 된다.
하지만 일본군의 상륙작전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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