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남부루손군의 철수(1) - 제1보병연대의 철수


남부루손군의 철수는 북부루손군이 D-1 선을 떠남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12월 24일 오후 10시에 파커 장군은 남부루손군 사령관직을 제51사단장 존스 장군에게 넘기고 바탄으로 떠났다.

남부루손군의 병력은 제51사단(PA), 제1사단제1연대(PA), 제41사단제42연대(PA)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력인 제51사단은 훈련과 장비가 열악했는데 가령 사단포병이 영국제 75mm 곡사포 8문으로 이루어진 1개 포대 밖에 없었다. 남부루손군의 화력지원을 담당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만든 프랑스제 155mm 평사포 3개 포대로 이루어진 제86야전포병연대와 75mm 자주포 3개대대로 이루어진 제2임시포병단이었다. 기갑세력은 제194전차연대 C중대가 유일했다.


(남부루손군의 철수.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PI/USA-P-PI-11.html P.192)


남부루손군이 상대한 일본군의 규모도 작았다. 제16사단장 모리오카 스스무 중장이 지휘하는 일본군은 보병제20연대, 수색제16연대, 그리고 포병 및 지원부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모리오카 장군의 부대가 진격할 지형은 링가옌 부대와 달리 장애물이 많았다. 라몬만에 상륙한 모리오카 부대는 타야바스산맥을 넘어서자 바나하오산에 부딪혔다. 일본군 주력은 바나하오산의 남쪽을 돌아 서진한 다음 북상하여 마닐라로 향할 것이었다. 마우반에 상륙한 분견대는 바나하오산의 북쪽을 통과한 후 베이호의 남안을 따라 서진하여 마닐라로 북상할 것이었다.


남부루손군 사령관 존스 장군은 제1보병연대를 바나하오산의 북쪽 기슭에, 제52 및 제53보병연대를 남쪽 기슭에 배치했다. 제194전차대대 C중대의 하프트랙 정찰대가 바나하오산 동쪽에 남북으로 난 도로를 다니면서 두 방어선 사이를 감시했다.


마우반에는 츠네이로 나리요시 중좌가 지휘하는 보병제20연대제2대대와 야포병제22연대의 1개 중대가 상륙했다. 츠네이로부대는 상륙 직후 내륙으로 진격하여 루반을 점령한 다음 남하하여 아티모난에 상륙한 제16사단 주력의 진격을 지원하든지 아니면 바나하오산의 북쪽 기슭을 돌아 베이호의 남안을 따라 진격할 것이었다.


츠네이로부대의 진로에 자리잡은 것은 삼팔록을 지키고 있던 제1정규사단(PA)의 제1보병연대(제3대대 감편)이었다. 제1보병연대는 24일 새벽에 극동미육군사령부로부터 북쪽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이동을 시작하기 전에 새로 남부루손군 사령관이 된 존스 장군이 철수명령을 폐기하고 사수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제1보병연대의 선임 미군장교로서 연대를 실질적으로 지휘하던  랠프 럼볼트 소령은 츠네이로부대가 접근하자 25일 새벽 3시에 독단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남부루손군 사령관 존스 장군이 정오에 크리스마스 점심을 먹으려할 때 제194전차대대 C중대 하프트랙 정찰대의 전령이 오토바이를 타고와서 제1보병연대의 철수 소식을 전했다. 존스 장군은 루반에서 북서쪽으로 10km 떨어진 루이지애나로 후퇴한 제1보병연대본부를 찾아가서 럼볼트 소령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추궁했다. 럼볼트 소령은 24일 새벽에 내려진 철수명령은 받았지만 나중에 내려진 존스 장군의 사수명령은 받지 못했으며 사실 남부루손군사령관이 존스 장군으로 바뀐 사실도 몰랐다고 변명했다.

 

존스 장군은 럼볼트 소령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명령한 후 제194전차대대 C중대 정찰대의 하프트랙을 타고 제1보병연대의 앞에서 삼팔록 쪽으로 전진했다. 오후 7시경에 존스 장군은 피스 부근에서 일본군 정찰대와 조우했다. 일본군이 쏜 기관총탄에 맞아 존스 장군이 타고있던 하프트랙이 망가졌으나 장군은 무사히 탈출했다. 공격을 받은 미군정찰대는 뿔뿔이 흩어졌으며 뒤따르던 제1보병연대는 전진을 멈추었다. 걸어서 제1보병연대에 도착한 존스 장군은 제194전차대대 C중대 제2소대를 제1보병연대에 배속하고 럼볼트 소령에게 최대한 지연전을 전개하라고 명령한 후 전선을 떠났다. 제1보병연대는 피스 남쪽의 도로교차점에 방어선을 폈다.


26일 아침이 되자 럼볼트 소령은 제194전차대대 C중대 제2소대에게 피스로 가서 일본군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소대장 로버트 니덤 중위는 먼저 정찰할 것을 건의했으나 럼볼트 소령은 일본군에게는 기관총밖에 없다면서 정찰없이 공격할 것을 명했다. 그러나 전날 하프트랙을 본 일본군은 미군전차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전차포를 서둘러 배치한 상태였다. 좁은 도로를 따라 피스로 접근하던 미군전차는 일본군 대전차포의 공격을 받았다. 선두 전차와 2번 전차가 피격되어 파괴되었고 선두 전차에 타고 있던 소대장 니덤 중위는 전차승무원들과 함께 전사했다. 뒤따르던 전차들은 방향을 돌려 달아났으며 이 전차들은 12월 31일에야 미군전선에 복귀했다.


전차가 사라지자 제1보병연대는 공포에 질려 일본군이 다가오기도 전에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때 수십대의 택시가 후방으로부터 몰려와 연대의 퇴로를 막았다. 몽고메리 맥키 예비역 소령이 이끄는 필리핀 스카우트 예비역 300명이 포트맥킨리에 집결한 후 택시 수십대를 타고 전선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맥키 소령 이하 300명이 후퇴 중이던 제1보병연대와 만났다는 보고를 받은 존스 장군은 이들을 연대에 편입시킴과 동시에 럼볼트 소령을 해임하고 맥키 소령을 제1보병연대장으로 임명했다. 노련하고 잘 훈련된 필리핀 스카우트 출신의 예비역 300명은 연대 곳곳에 배치되어 풋내기 징집병들을 순식간에 휘어잡았다. 맥키 소령은 철수를 중단시키고 방어선 사수를 명했다.


잠시 후 츠네이로부대가 공격하자 제1보병연대는 예비역을 주축으로 똘똘 뭉쳐 단호하게 맞섰다. 몇 시간에 걸친 격전 끝에 제1보병연대는 일본군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루이지애나를 향하여 23번 도로를 따라 북서쪽으로 물러섰다. 그러나 츠네이로부대도 기진맥진하여 추격하지 못하고 남쪽인 루반으로 향했다. 


아티모난에 상륙했던 수색제16연대의 일부가 루반으로 북상하여 28일 새벽에 츠네이로부대에 합류했다. 병력을 보충한 츠네이로부대는 23번 도로를 따라 루이지애나로 북상했다.


한편 바나하오산 남쪽을 통한 일본군 주력의 진격 때문에 제1보병연대의 퇴로가 끊길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존스 장군은 제1보병연대에게 후퇴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에 따라 제1보병연대는 28일 오전 10시에 철수를 시작했다.


츠네이로부대는 저항을 받지 않고 28일 정오에 루이지애나를 점령했다. 이후 조심스럽게 23번 도로를 따라 북상한 츠네이로부대는 30일 정오에 루반에서 북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패그산잔에 도착했는데 제1보병연대는 이미 이곳을 통과하여 철수한 후였다. 이후 츠네이로부대는 사단명령에 따라 남하하여 30일 밤에 루반에 도착했다. 


제1보병연대는 23번 도로를 따라 북상하여 패그산잔을 거쳐 산타크루즈까지 간 후 21번 도로를 따라 서진하여 29일에 로스바노스에 도착하여 방어선을 폈다. 한편 북쪽에 배치되었던 제1보병연대 제3대대는 28일에 베이호 북안의 필릴라까지 후퇴하여 방어선을 폈다. 이로써 제1보병연대는 라몬만의 마우반으로부터 베이호 남안의 로스바노스까지 56km를 무사히 철수했다. 이제 철수명령이 떨어지면 북상하여 마닐라를 통과한 후 산 페르난도를 거쳐 바탄반도로 들어갈 것이었다.

Posted by 대사(P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