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클라크 비행장 피습
12월 8일 오전 3시 30분에 마닐라 라디오 방송이 진주만 기습을 알린 직후 이바 비행장의 레이더가 해안으로부터 120km 떨어진 곳에서 코레히도르로 접근하는 정체불명의 비행기를 발견했다. 즉시 이바 비행장에서 P-40 전투기 6대가 이륙하여 추격했다. 레이더 상에서 전투기들은 정체불명기와 겹쳐졌으나 실제로는 고도가 낮아서 접촉하지 못했다. 잠시 후 정체불명기는 서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 비행기는 일본해군이 띄운 기상관측기였다.
(가와사키 ki-48 99식쌍발경폭격기.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s://en.wikipedia.org/wiki/Kawasaki_Ki-48)
8일 새벽부터 대만을 감싸고 있던 안개는 동틀녁에 육군비행장부터 걷히기 시작했다. 8일 오전 5시 50분부터 7시에 걸쳐 비행제8전대의 99식 경폭격기 25대가 자둥 비행장에서, 그리고 비행제14전대의 97식 중폭격기 18대가 조주 비행장에서 이륙했다. 남하하던 일본기들은 오전 9시가 되기 조금 전에 미군 레이더에 잡혔다. 경보를 받은 클라크 비행장의 B-17 은 황급히 공중으로 대피했고 전투기들이 요격하러 날아올랐다. 그러나 일본기들은 미군 전투기가 전개한 로살레스 상공까지 오지 않고 9시 23분부터 비행제8전대가 투게가라오를, 그리고 비행제14전대가 바기오를 폭격했다. 오전 10시에 미군 레이더가 철수 중인 일본기를 카가얀 하곡 상공에서 포착하고 일본기가 남하 중이라는 잘못된 경보를 보냈으나 20분 후에 북쪽으로 철수 중이라고 정정했다. 일본육군기들은 오전 11시 30분까지 1대도 빠짐없이 귀환했다.
(미츠비시 Ki-21 97식중폭격기.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s://en.wikipedia.org/wiki/Mitsubishi_Ki-21)
그동안 대만에서는 해군비행장 상공의 안개도 걷혀서 제11항공함대는 공격대를 내보낼 수 있었다. 오전 10시 15분에 제로기 85대의 호위를 받는 일본해군의 96식 및 1식 육상공격기 106대가 클라크와 이바 비행장을 목표로 이륙했다.
일본해군기들이 북부 루손에 접근하는 동안 오전 9시에 이륙했던 B-17과 미군전투기들은 착륙하기 시작했다. 남하하던 일본해군기가 레이더에 잡힌 오전 11시 27분이 되자 필리핀의 미군기는 1-2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상에 있었다. B-17 은 클라크 비행장에 착륙하여 오후에 실시될 대만 폭격을 위하여 폭탄을 장착하고 급유를 받았다. 일본육군기를 요격하러 이륙했던 제20추격비행대대의 전투기들도 착륙하여 급유를 받았고 제20추격비행대대를 대신하여 클라크 비행장 상공을 지키던 제17추격비행대대도 니콜스 비행장에 착륙하여 급유를 받았다. 제3추격비행대대는 이바 비행장에서, 제34추격비행대대는 델 카르멘 비행장에서 대기 중이었다.
(루손의 미국 비행장. http://www.ibiblio.org/hyperwar/AAF/I/AAF-I-6.html P.202)
오전 11시 30분부터 남하하는 일본기에 대한 경보가 니엘슨 비행장의 극동미육군항공대 사령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레이더 기지 뿐만 아니라 루손 서북쪽 해안에 배치된 대공 경계원들도 고공 비행하는 일본폭격기를 발견하고 전화나 전보로 보고했다. 제5추격사령부 참모장 해럴드 조지 대령은 휘하의 추격비행대대에 발진 명령을 내렸다.
니콜스 비행장의 제17추격비행대대는 바탄 반도 상공으로 직행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제21추격비행대대는 마닐라 상공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델 카르멘 비행장의 제34추격비행대대는 클라크 비행장 상공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비행장 상공의 기상이 나빠서 이륙하지 못했다. 클라크 비행장에서는 제20추격비행대대가 재급유를 받고 있었다. 이바 비행장의 제3추격비행대대는 본대에 앞서 남중국해를 남하 중인 일본기를 요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일본기들은 일본폭격기를 선행한 제로기로서 제3추격비행대대와 만나기 전에 클라크 비행장 방향으로 변침했다.
이후에 극동미육군항공대 내부에서 벌어진 상황은 불명확하다. 항공경계대장 알렉산더 캠벨 대령은 텔레타이프를 사용하여 오전 11시 45분에 경고 메시지를 클라크 비행장에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클라크 비행장에 있던 제5폭격사령관 유뱅크 중령은 폭격 직전까지 경고를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정황을 보면 두 사람이 모두 사실을 말하고 있으며 전달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제24추격비행전대사에는 오전11시 45분에 폭격대형이 링가옌 만을 남하 중이라는 출처 미상의 텔레타이프가 들어왔으나 문장이 깨져서 읽기 어려웠다는 기술이 나온다. 그런데 제24추격비행전대의 본부는 니콜스 비행장에 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실수로 경고 메시지가 클라크 비행장이 아닌 니콜스 비행장에 전달된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비행전대사의 기술은 클라크 비행장에 주둔하던 제20추격비행대대의 일지를 보고 적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제20추격비행대대가 텔레타이프가 전한 경고 메시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는 소리가 되는데 그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제20추격비행대대는 새벽부터 여러번 잘못된 경보를 받았고 오전 9시에는 실제로 출격하여 하릴없이 공중에서 대기하다가 적기는 보지도 못한 채 연료가 떨어져 착륙한 후 재급유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발신자도 알 수 없고 문장이 깨져서 읽기도 어려운 경고 메시지에 따라 전투기의 재급유를 중단하고 긴급발진시킬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무시한 경고 메시지를 폭격사령부에 전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실제로 폭격사령관 유뱅크 중령은 그날 오전에 잘못된 경고가 2-3번 있었다고 말하여 은연 중에 이런 가능성을 시사했다.
오후 12시 15분에 제20추격비행대대의 재급유가 끝나자 전투기들이 차례로 이륙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일본해군 제1항공대의 96식 육상공격기 27대가 클라크 비행장 상공에 나타나 6,600m - 7,500m 고도에서 폭격을 시작했다. 공습 경보는 첫 폭탄이 떨어지기 불과 몇 초 전에야 울렸다. 1대를 제외한 B-17 모두가 지상에 주기중이었고 전투기는 막 이륙하기 시작한 참이었다. 전투기 4대가 이륙에 성공했고 전투기 4대는 지상주행 중에 폭탄을 맞아 파괴되었다. 일본해군항공대의 에이스였던 사카이 사부로는 자신의 저서 대공의 사무라이에서 폭격이 놀라울만큼 정확했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일본군은 출격 지연에도 불구하고 진주만처럼 완전한 전술적 기습에 성공했다.
(미츠비시 G3M 96식 육상공격기,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사진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Mitsubishi_G3M)
공격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다. 미국 역사가들은 대체로 오후 12시 15분에서 40분 사이에 공격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반면 일본 전사총서에는 도쿄시간 오후 1시 30분(현지시간 오후 1시)에 폭격을 시작했다고 되어 있고 사카이 사부로는 자신의 책에 도쿄시간 오후 1시 45분(현지시간 오후 1시 15분)에 폭격이 시작되었다고 적었다.
제1파가 지나간지 15분 후에 1식 육상공격기 26대로 이루어진 제2파가 들이닥쳐 폭격을 가하고 사라졌다. 2차례의 폭격이 끝나자 신고 히데키 중위가 지휘하는 타이난 해군항공대의 제로기 34대가 저공비행으로 지상을 기총소사하기 시작했다. 폭탄을 싣고 있던 B-17과 항공유를 만재한 P-40 전투기들이 지상에서 제로기의 기총소사를 받았다. 공격은 1시간 동안 이어졌다.
(미츠비시 A6M 제로전투기.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s://en.wikipedia.org/wiki/Mitsubishi_A6M_Zero)
미군의 대공포화는 비효율적이었다. 제200대공해안포연대가 보유한 3인치 대공포탄의 불발율은 비정상적으로 높아서 발사된 포탄 6발 중 1발만이 실제로 터졌으며 그나마 일본기의 600m - 1200m 아래에서 폭발했다. 지상정비요원이나 경비병들이 주기된 비행기의 기관총을 잡고 저공비행으로 기총소사를 가하는 제로기에 대항했다.
공습이 시작되기 직전에 이륙한 P-40 전투기 4대는 제로기 3대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델 카르멘 비행장의 날씨가 좋아지면서 제34추격비행대대의 구형 P-35 전투기 18대가 이륙하여 클라크 비행장으로 달려왔으나 숫자와 성능에서 압도적인 제로기에게 막혔다. 다만 제로기들이 기총소사하느라고 20mm 기관포탄을 거의 소모하고 7.7mm 기총으로 상대한 까닭에 P-35 모두가 피해를 입었으나 격추된 기체는 3대에 그쳤다. P-35 조종사들은 제로기 3대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바탄반도 및 마닐라 상공에는 제17 및 제21추격비행대대의 P-40 전투기들이 있었으나 클라크 비행장의 통신소가 폭격을 받는 바람에 구원 요청을 타전할 수 없었다. 바탄반도 및 마닐라 상공의 조종사들이 불과 80km 떨어진 클라크 비행장에서 피어오르는 짙은 연기를 왜 보지 못했는지는 의문이다.
(세베르스키 P-35 전투기.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s://en.wikipedia.org/wiki/Seversky_P-35)
폭격 당시 B-17의 분산은 불완전했다. 그러나 어차피 대부분의 B-17 이 폭탄이 아니라 집요하게 B-17을 물고 늘어진 제로기의 기총소사로 파괴되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분산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연료자동방루장치의 수리를 위하여 이날 아침 9시 35분에 민다나오의 델몬테 비행장을 이륙한 B-17 한대가 하필이면 제로기가 한참 기총소사하고 있을 때 클라크 비행장에 접근했다. B-17은 제로기 3대로부터 공격을 받았으나 기장 얼 타쉬 중위는 큰 피해를 입은 자신의 폭격기를 끌고 델몬테 비행장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클라크 비행장에 주둔 중이던 B-17 중 1대만이 파괴를 모면했다. 존 카펜터 중위의 B-17은 루손 동해안을 정찰하라는 명령을 받고 클라크 비행장을 떠나 공습이 끝난 이후에 돌아왔다.
클라크 비행장에 대한 제11항공함대의 공격은 성공했다. 일본폭격기들은 격납고, 막사, 식당, 작업장 그리고 창고를 박살내었다. 미육군항공대의 공식전사에 의하면 주기 중이던 미군기들은 대부분 제로기의 기총소사로 파괴되었다. 미군의 전사자는 55명이었으며 부상자는 100명 이상이었다.
(미츠비시 G4M 1식 육상공격기.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사진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Mitsubishi_G4M
가오슝해군항공대의 1식 육상공격기 53대와 요코야마 타모츠 중위가 지휘하는 제3항공대의 제로기 51대는 이바 비행장을 공격했다. 남중국해를 초계하다 돌아온 제3추격비행대대의 P-40 전투기 12대가 착륙하려고 선회하던 중 일본기가 들이닥쳤다. 착륙 준비 중이던 P-40 전투기는 제로기와 맞붙어 3대를 격추했다고 주장했으나 그 댓가로 5대가 격추되고 3대가 연료 부족으로 추락했다. 제로기는 이들을 상대하느라 클라크 비행장에서와 달리 지상에 대한 기총소사를 거의 하지 못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피해는 상당했다. 제3추격비행대대의 P-40 은 2대를 빼고 모두 파괴되었다. 이바 비행장의 막사, 창고, 장비 그리고 레이더가 박살났으며 지상 병력의 피해도 컸다.
이로써 개전 하루 만에 극동미육군항공대는 절반 가까운 전력을 잃었다. 35대의 B-17 중 18대가 파괴되었다. 107대의 P-40 중 9대가 격추되고 3대가 연료부족으로 추락했으며 40대가 지상에서 파괴되었다. 3대의 P-35도 파괴되었으며 B-10, B-18 및 정찰기 25-30대가 파괴되었다. 살아남은 비행기 중에서도 많은 수가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클라크 및 이바 비행장의 시설은 불타거나 파괴되었다. 인명 피해는 전사 80명, 부상 150명에 달했다. 일본의 손실은 제로기 7대였다. 이로써 일본군은 루손 상공의 제공권 다툼에서 기선을 제압했다.
진주만 기습에 이은 일대 참사였던 클라크 비행장 피습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아직도 논란거리다.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브레러튼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지만 가장 큰 책임은 맥아더에게 있다고 본다. 그런 큰 실수를 저지르고도 남서태평양지역사령관이 되어 만회할 기회를 얻은 맥아더는 진주만 기습을 당한 킴멜 제독이나 쇼트 장군과 비교하면 엄청난 행운아였다. 소련같으면 9시간 전에 경고를 받고도 기습을 허용하여 하루 만에 항공력의 절반을 잃은 사령관은 총살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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