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동부 솔로몬 해전(1) - 일본함대의 남하

 

미드웨이 해전에서 참패한 일본해군은 1942년 7월 14일에 잔존항공모함 6척(쇼가쿠, 즈이가쿠, 준요, 히요, 즈이호, 류조)을 모두 포함하는 제3함대를 창설하고 나구모 주이치 중장을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미드웨이 해전의 참패를 설욕할 기회를 노리던 야마모토 제독은 사보 섬 해전의 승리로 인하여 과달카날 부근 해역의 제해권이 일본해군에게 넘어오자 미국이 항모기동부대를 보내어 제해권을 되찾으려고 시도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1942년 8월 16일에 제3함대에게 즉시 동원가능한 항공모함 3척(쇼가쿠, 즈이가쿠, 류조)를 이끌고 트럭 섬으로 남하하라고 명령했다.

 

야마모토 제독은 이치기 대좌의 공격 실패를 알게 되자 과달카날의 앞머리를 딴 '과호 작전' 을 발령했다.

이 작전은 트럭 섬에 있던 곤도 노부다케 중장의 제2함대와 남하 중인 나구모 중장의 제3함대를 동원하여 제8함대가 호위하는 이치기 지대의 제2진 1,500 여명을 실은 수송선단을 무사히 과달카날로 보내는 동시에 수송선단을 차단하러 나오는 미국의 항모기동부대를 공격하여 산호해 해전과 미드웨이 해전에 이어 사상 3번째의 함대항공전을 벌이려는 것이었다.

 

과호 작전에 의거하여 라바울에서는 약 100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제11항공함대가 헨더슨 비행장을 연일 폭격했으나 칵터스 항공대도 지지않고 와일드캣을 내보내어 반격을 가했기 때문에 비행장에 끼친 피해는 미미했다.  

그러자 라바울의 제17군과 제8함대 사령부는 수송선단의 안전을 위하여 제3함대의 함재기로 헨더슨 비행장을 폭격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미드웨이에서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던 나구모 제독은 쇼가쿠와 즈이가쿠로 헨더슨 비행장을 폭격해 달라는 요청은 거절하고 대신 경항공모함인 류조가 헨더슨 비행장을 폭격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헨더슨 비행장이 마음에 걸린 제8함대는 8월 22일 밤에 수송선단의 호위를 맡은 제2수뢰전대에서 구축함 가게로와 가와카제를 빼내어 헨더슨 비행장을 포격하게 했으나 구축함 2척의 화력으로는 비행장에 실질적인 피해를 입히기 어려웠다.

가게로와 가와카제는 8월 23일 새벽에 헨더슨 비행장 포격을 마치고 돌아가다가 아이언바텀사운드에서 수송함 포말하우트와 알헤나

를 호위하고 과달카날에 도착한 구축함 블루, 헨리 및 헬름과 마주쳤다.

미구축함들보다 먼저 상대를 발견한 가게로와 가와카제는 교전을 회피하고 산소어뢰를 잔뜩 뿌린 다음 고속으로 달아났다.

 

미구축함의 선두에 섰던 블루는 23일 새벽 3시 55분에 4,600m 전방을 고속항진 중인 가와카제을 레이더로 발견했다.

블루와 가와카제 간의 거리가 2,900m 로 줄어든 3시 59분에 가와카제가 발사한 산소어뢰 중 1발이 블루의 함미 바로 뒷쪽으로 접근했다.

이 어뢰는 함미를 약 2m 정도 비껴갔으나 예민한 어뢰의 신관이 블루가 만든 물살에 부딪혀서 폭발했다.

블루의 함미 쪽에서 커다란 오렌지빛 폭발이 일어나면서 블루의 키와 프로펠러가 흔적도 없이 날아갔고 함미의 수병과 장비들이 15m 나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 폭발로 수병 9명이 사망하고 21명이 부상을 입었다.

재빠른 승무원들의 대처 덕분에 블루는 침몰을 면하고 툴라기 항에 예인되었으나 전투함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했다.

결국 그날 저녁에 터너 제독은 블루를 처분하라고 명령했다.

 

8월 23일 오전 7시 50분에 칵터스 항공대의 와일드캣 1대가 툴라기 북방 160km 해상에서 가와카제를 발견하고 기총소사를 가했으나 수병 1명을 부상시키는데 그쳤다. 

 

제3함대 사령관 나구모 중장은 트럭 섬에 도착하면 제2함대 사령관인 곤도 중장과 작전을 협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치기 지대가 전멸했다는 보고를 받은 야마모토 제독이 급히 출항을 명령하는 바람에 제대로 작전을 조율하지도 못한 채 서둘러 해상으로 나섰다.

그리하여 안 그래도 제2함대, 제3함대, 제8함대가 연합한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의 일본함대는 사전 조율이 미흡한 이유도 있어서 상당히 복잡한 전투서열을 가지게 되었다. 

 

우선 전력의 핵심은 나구모 중장이 직접 지휘하는 공격부대였다.

항공모함 2척(쇼가쿠, 즈이가쿠)과 구축함 6척으로 이루어진 공격부대는 제로기 53대, 99식 함상폭격기 41대, 97식 함상공격기 36대등 총 130대의 함재기와 수상정찰기 1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해군의 항공모함 쇼가쿠.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공격부대의 전방에는 아베 히로아키 소장이 지휘하는 전위부대가 있었다.

전위부대는 전함 2척(히에이, 기리시마), 중순양함 3척(스즈야, 구마노, 치쿠마), 경순양함 1척(나가라), 그리고 구축함 6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본해군의 전함 기리시마.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다시 전위부대의 전방에는 곤도 제독이 지휘하는 지원부대가 있었다.

지원부대는 중순양함 5척(아타고, 마야, 다카오, 묘고, 하구로), 경순양함 1척(유라), 수상기 모함 1척(치토세), 그리고 구축함 6척으로 이루어져 수상정찰기 22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실전에서는 아베 소장의 전위부대와 곤도 중장의 지원부대는 사실상 같이 움직였고 아베 소장은 제3함대 소속이지만 전술적으로는 제2함대 사령관인 곤도 제독의 명령을 받았다.

 

하라 다다이치 소장의 견제부대는 일종의 미끼역할을 맡았다.

경항공모함 1척(류조), 중순양함 1척(도네), 구축함 2척으로 이루어져 제로기 16대와 97식함상공격기 21대를 보유한 견제부대는 공격부대의 90km 전방에 나아가서 헨더슨 비행장을 공습함으로써 미국항모기동부대의 공습을 유도할 예정이었다.

그 동안 쇼가쿠와 즈이가쿠를 출발한 일본함재기들이 미국항모들을 덮친다는 계획이었다.

 

(일본해군의 경항공모함 류조.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이치기 지대의 제2진 1,500명을 실은 수송선단은 주력함대의 서쪽에서 남하했다.  

선단은 수송선 3척(보스턴마루, 다이후쿠마루, 긴류마루)와 제1차 대전형 구축함을 개조한 경비함 4척(제1호, 제2호, 제34호, 제35호)로 이루어져 있었다.

경비함 4척도 인원과 물자를 수송하고 있었다. 

다나카 라이조 소장이 지휘하는 호위함대는 경순양함 1척(진츠) 및 구축함 5척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별도로 사보 섬 해전의 영웅인 미카와 군이치 중장이 지휘하는 중순양함 4척(죠카이, 아오바, 기누가사, 후루다카)이 외곽에서 이중으로 호위했다.

 

주력함대의 전방에서는 트럭 섬에서 파견한 잠수함 6척이 정찰과 함께 필요하면 공격을 가할 목적으로 일렬로 전진했고 렌넬 섬 남쪽 해상에는 라바울에서 파견한 잠수함 3척이 역시 같은 목적을 띄고 파견되었다.

이외에도 약 100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라바울의 제25항공함대에서 헨더슨 비행장을 폭격하여 수송선단의 안전을 도모하기로 했다.

 

이러한 일본함대의 총 전력은 항공모함 2척, 경항공모함 1척, 전함 2척, 중순양함 13척, 경순양함 3척, 수상기 모함 1척, 구축함 25척, 잠수함 9척에 함재기 167대, 수상정찰기 23대(전함 및 순양함 소속의 수상정찰기는 제외)로 이루어져 있어서 상당히 강력한 편이었다.

 

한편 진주만의 암호해독반은 일본해군의 통신을 해석하여 항공모함을 포함한 대규모의 일본함대가 트럭 섬으로 남하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이 첩보는 해안감시대원과 연합군의 정찰로 확인되었다.

 

일본해군은 1942년 8월 1일을 기하여 해군용 암호인 JN25 의 해독용 난수표를 전면 교체했다.

이 조치 때문에 미드웨이 해전 당시 일본함대의 구성, 목적 및 항로, 지휘관까지 정확하게 파악하여 미해군의 승리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던 진주만의 암호해독반은 8월 초부터 완전한 혼란상태에 빠져 있었다.

만일 진주만의 암호 해독반이 8월 초에도 여전히 미드웨이 해전 때처럼 일본군의 통신을 모두 해석할 수 있었다면 사보 섬 해전의 결과도 전혀 다르게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암호 해독반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 끝에 부분적으로 해독에 성공한 첫 성과물이 바로 일본제3함대의 남하를 탐지해 낸 것이었다.

8월 말이 되어서도 진주만의 암호해독반은 일본해군의 암호를 정확하게 해독해내지 못했고 결국 현장지휘관인 플레처 제독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어서 판단을 그르치게 만드는 한 요인이 된다.

 

항공모함을 포함한 대규모의 일본함대가 트럭에 집결했다는 소식을 들은 곰리 제독은 제61기동부대 사령관 플레처 제독에게 과달카날 동방 해상으로 나아가서 남하하는 일본함대를 저지하라고 명령했다.

진주만에서는 니미츠 제독이 하와이를 지키던 마지막 항공모함인 호넷 중심의 제17기동부대를 8월 17일에 남태평양으로 파견했으나 제17기동부대는 동부 솔로몬 해전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제61기동부대는 항공모함 3척(새러토가, 엔터프라이즈, 와스프)을 중심으로 하는 3개의 기동부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플레처 제독 자신이 지휘하는 제11기동부대는 항공모함 새러토가를 중심으로 중순양함 2척(미니애폴리스, 뉴올리언스), 구축함 5척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와일드캣 36대, 돈틀레스 37대, 아벤저 15대 등 88대의 함재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토머스 킨캐이드 소장이 지휘하는 제16기동부대는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를 중심으로 신형전함 1척(노스캐롤라이나), 중순양함 1척(포틀랜드), 대공경순양함 1척(애틀랜타), 구축함 6척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와일드캣 36대, 돈틀레스 37대, 아벤저 15대 등 총 88대의 함재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레이 노이즈 소장이 지휘하는 제18기동부대는 항공모함 와스프를 중심으로 중순양함 2척(샌프란시스코, 솔트레이크시티), 대공경순양함 1척(산후앙), 그리고 구축함 7척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와일드캣 29대, 돈틀레스 36대, 아벤저 15대 등 총 80대의 함재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제61기동부대 전체로는 항공모함 3척, 신형전함 1척, 중순양함 5척, 대공경순양함 2척, 구축함 18척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와일드캣 101대, 돈틀레스 110대, 아벤저 45대 등 총 256대의 함재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CV-3 새러토가.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따라서 제61기동부대는 일본함대에 비하여 수상함 전력은 다소 열세이나 함재기 전력은 256대로 167대를 보유한 일본함대보다 오히려 훨씬 강했다. 

그러나 플레처 제독의 판단 실수로 제18기동부대가 전투에 참가하지 못함에 따라 제61기동부대의 함재기 수는 176대로 대폭 감소하여 일본함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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