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기습의 보고를 받은 직후,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민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웨이크 섬을 상실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주만에서는 전함 애리조나의 화재가 꺼지기도 전에 웨이크 섬을 구원하거나 수비대를 증강하기 위한 계획이 세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만 조급할 뿐 실현가능한 방안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미태평양함대의 주력이 진주만의 해저에 가라앉아 버린 지금, 함대가 웨이크 섬 주변 해역의 제해권을 장악하여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었다.
결국 웨이크 섬의 운명은 섬 자체의 방어태세와 그곳에 주둔한 해병대의 전투능력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었다.
진주만의 태평양함대 사령부로서는 웨이크 섬 주둔군의 방어태세를 강화할 수 있도록 약간의 도움-가능하다면-을 제공하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웨이크 섬에 대한 대규모의 병력증강은 불가능했다.
오아후 섬에서 사용가능한 해병대 병력인 제3, 제4 해병방어대대와 제1해병방어대대의 2개 중대, 그리고 기타 본부요원들과 함정들에 파견되었던 소수의 병력들은 모두 진주만을 지키는 최후 방어선인 팔미라 섬, 존스턴 섬, 그리고 미드웨이의 방어를 위하여 배치되었다.

다만 장비에 있어서는 상황이 달랐다.
진주만에 있는 해병대 보급창에는 레이더를 비롯하여 기지방어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장비와 보급품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F2A “Brewster Buffalo” 전투기로 무장한 해병제221전투비행대(VMF-221)도 항공모함 USS Saratoga 에 실려 태평양을 건너오고 있었다.

 

(F2A-3 버팔로 전투기. 승무원 : 1명, 길이 : 8m, 폭 : 10.7m, 최고속력 : 516km/hr, 항속거리 : 2,703km, 무장 : 12.7mm 기관총 4정, 45kg짜리 폭탄 2발)

 

새러토가는 미본토 서해안의 샌디에고 항을 12월 8일 오전 10시 17분(미본토 서부시각, 웨이크 섬에서는 12월 9일)에 출항하여 전속력으로 진주만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USS Saratoga CV-3, 표준배수량 : 36,000톤, 길이 : 271m, 폭 : 32m, 속력 : 33.3노트, 항속고리 : 10노트로 19,000km, 함재기 : 91대, 승무원 : 2,122 명)

 

12월 9일, 진주만의 미태평양함대 사령부에서는 웨이크 섬의 구원작전을 입안했고, 다음날 확정했다.
제14기동부대(Task Force 14)로 명명된 구원함대는 항공모함 새러토가를 중심으로 하여 중순양함 3척(Astoria, Minneapolis, San Francisco), 구축함 9척, 수송선 역할을 하는 수상기 모함 Tangier 및 함대급유선 Neches 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마셜제도의 일본군들을 견제하여 제14기동부대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항공모함  USS Lexington 을 중심으로 하는 제11기동부대(Task Force 11)가 웨이크 섬에서 남쪽으로 1,300km 떨어진 마셜제도의 잴루잇 환초를 폭격할 예정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이 두 함대를 지원할 목적으로 William Frederick "Bull" Halsey, Jr. 중장이 지휘하는 항공모함 USS Enterprise 중심의 제8기동부대(Task Force 8)가 존스턴 섬 서방 해상까지 진출할 예정이었다.

12월 13일 아침, 제4해병방어대대 장병들이 웨이크 섬에 보낼 장비와 보급품들을 진주만의 제10번 부두에 정박한 탠지어 호에 선적하기 시작했다.
그 목록을 살펴보면

1) 76.2mm 대공포를 위한 사격통제장치 및 정보전송장치 3세트와 여분의 정보전송용 케이블, 정비용 공구 및 예비 부품
2) 5인치 해안포 전부에 장착할 수 있는 사격통제장치 6세트와 충분한 수량의 예비 부품 및 소모품 일체
3) 웨이크 섬에 있던 제1차 세계대전형 21초짜리 시한신관보다 더 일찍, 더 멀리, 더 높이 사격 가능한 신형 30초짜리 시한신관이 달린 12,000 발의 76.2mm 포탄
4) 9,000 발의 5인치 해안포탄
5) 300만 발 이상의 12.7mm 중기관총 및 7.62mm 기관총탄, 충분한 수량의 소총탄과 권총탄, 수류탄, 대인지뢰 등
6)기타 철조망과 토목용 공구 등
7)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각 1조씩의 SCR-270 경계레이더와 SCR-268 사격통제레이더

등이었다.

또한 제4해병방어대대에서 차출된 대공포대(76.2mm 대공포 4문)와 해안포대(5인치 해안포 2문)가 각 1개 포대씩, 12.7mm 중기관총과 7.62mm 기관총 각 1팀씩이 무기, 사격통제장치, 충분한 예비부품 및 소모품 등과 함께 선적되었고, 포대원들과 기관총사수들, 소수의 사령부요원과 행정요원 등이 제221해병전투비행대의 지상요원들과 함께 탠지어에 승선했다.
그리고, 탠지어가 출항하기 직전, H.S. Fassett 해병대령이 웨이크 섬 사령관의 임무를 맡기 위하여 승선하여 항해 기간 중 탠지어에 승선한 모든 해병대원들을 지휘했다.

 

 

(진주만에서 탠지어에 승선하고 있는 해병대원들)

 

제14기동부대가 웨이크 섬에 접근하면 새러토가에서 제221해병비행중대를 발진시키고, 그동안 탠지어 호는 웨이크 섬에 도착하여 소수의 병력과 함께 대량의 탄약, 보급품, 장비 등을 하역하고, 부상자 전원과 민간인 중 650명을 수용한 후 진주만으로 귀환할 예정이었다.

12월 15일 오후 4시, 탠지어 호는 급유선 네치스 호와 함께 구축함 4척의 호위를 받으면서 진주만을 빠져나와 새러토가와 호위함정들이 기다리는 해상으로 향했다.

 

(USS Tangier AV-8, 배수량 : 11,760톤, 길이 : 150m, 폭 : 21.2m, 속력 : 18.4노트, 승무원 : 1,075명, 무장 : 5인치 함포 1문, 76.2mm 대공포 4문, 40mm 대공포 8문)

Posted by 대사(P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