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바둥해협 해전(3)- 제2파 및 제3파 공격

트롬프의 함장 미스터 대령이 지휘하는 제2파는 제58구축함분대장 토머스 빈포드 중령이 지휘하는 미국구축함 4척(스튜어트, 패럿, 존D에드워즈, 필즈베리)을 앞세우고 8km 후방에 경순양함 트롬프가 따라가는 진형을 취했다. 이는 제1파의 진형보다는 나았으나 트롬프가 너무 뒤쪽으로 처졌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제2파는 1942년 2월 20일 새벽 12시 45분에 타펠혹을 통과했고 오전 1시 10분에 20도로 변침한 다음 25노트의 속력으로 바둥해협으로 진입했다. 제2파가 도착했을 때 아사시오와 오시오, 그리고 사사고마루는 아직 사누르 정박지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바둥해협 해전 제2파의 전투상황도. <History of U.S. Naval Operations in World War II, Vol. III: The Rising Sun in the Pacific, 1931--April 1942> P.326

 

제2파의 미국구축함 4척은 스튜어트, 패럿, 존D에드워즈, 필즈베리의 순서대로 사누르 정박지로 뛰어들었다. 오전 1시 34분에 선두의 스튜어트가 왼쪽으로 약 2,000m 거리에서 2개의 함영을 발견했다. 그러자 일본구축함도 탐조등으로 스튜어트를 비추었다. 빈포드 중령은 연막을 펴면서 오른쪽으로 약간 틀어 침로를 30도로 맞추었다. 오전 1시 36분에 스튜어트와 패럿이 각각 6발, 그리고 필즈베리가 3발의 어뢰를 좌현 어뢰발사관으로부터 발사했으나 15발의 어뢰는 모두 빗나갔다.

제8구축대사령 아베 도시오 대좌는 이번에도 강력하게 반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오시오와 아사시오는 미국구축함을 향하여 달려들었다. 고속으로 접근하는 오시오를 탐조등으로 비춘 스튜어트의 승조원들은 위풍당당한 함체를 보고 자신들이 일본순양함과 대결중이라고 생각했다. 존D에드워즈가 오시오를 향하여 2발의 어뢰를 발사했으나 역시 빗나갔다. 

아사시오와 오시오는 오전 1시 45분에 미국구축함을 향하여 어뢰를 발사하고 선두의 스튜어트에게 포격을 가했다. 어뢰는 모두 빗나갔으나 스튜어트는 5인치 명중탄 2발과 지근탄 1발을 맞았다. 첫번째 명중탄은 그냥 함체를 통과했다. 그러나 오전 1시 46분에 부근 해상에 떨어진 지근탄의 파편이 3번 굴뚝에 상처를 입히면서 수병 1명을 죽였으며 부장에게 부상을 입혔다. 오전 1시 47분에 명중한 5인치 포탄은 후방조타기관실에 직경 1.2m 짜리 구멍을 내면서 침수를 일으켰으나 여전히 조타는 가능했다. 

오전 1시 48분에 스튜어트는 일본구축함의 포격을 피하여 65도로 침로를 바꾸었다. 스튜어트의 갑작스런 변침에 놀란 미국구축함들이 잇따라 급하게 변침하면서 진형이 무너졌다. 미국구축함들은 그 상태로 정박지를 벗어났다.

잠시 후 트롬프가 전장에 도착했다. 일본구축함들은 남하하면서 탐조등을 비추었고 트롬프도 오전 2시 5분에 역시 탐조등을 켰다. 그러자 일본구축함이 트롬프의 탐조등을 목표로 3,000m 거리에서 사격을 가했다.  일본군의 명중탄은 2시 7분에 처음 나왔는데 하필이면 어뢰의 사격통제장치와 주포의 사격지시기를 망가뜨리는 바람에 트롬프는 어뢰를 쓸 수 없었으며 150mm 주포는 포대마다 독자적으로 사격해야만 했다.

트롬프는 2시 9분부터 반격을 시작했다. 150mm 주포는 주로 오시오를 공격하고 40mm 보포스 대공포는 주로 아사시오를 공격했다. 오전 2시 11분에 트롬프의 150mm 주포탄 1발이 오시오의 함교에 명중하고 또다른 1발이 좌측 어뢰저장고를 맞추었으나 어뢰는 유폭하지 않았다. 오시오에서는 7명이 전사했다. 트롬프로부터 40mm 대공포로 공격을 받은 아사시오는 탐조등이 부서지고 4명의 전사자와 11명의 부상자를 기록했다. 2시 16분에 오시오가 트롬프를 향하여 3발의 산소어뢰를 발사했으나 빗나갔다.7분간의 포격에서 트롬프는 150mm 주포탄 71발과 40mm 대공포탄 수백발을 발사했으며 일본구축함들로부터 5인치 포탄 11발을 맞았다. 

오시오의 어뢰발사를 마지막으로 일본구축함들은 더 이상의 교전을 포기하고 수송선을 지키러 후퇴했다. 트롬프도 추적하지 않고 북동쪽으로 항진하여 정박지를 벗어났다. 5인치 포탄 11발을 얻어맞은 트롬프의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침수가 일어나고 있었고 사격지시기도 망가졌으며 9발을 집중적으로 얻어맞은 함교 부근은 걸레짝이 되었다. 사망자는 10명, 부상자는 30명이었다.

이때 제8구축대제2소대(미치시오, 아라시오)가 전장에 도착했다. 미치시오와 아라시오가 전장에 도착헀을 때 제2파는 완전히 흩어진 상태였다. 패럿은 발리 해안을 따라 북상하고 있었고 중앙에는 스튜어트와 에드워즈가 북상 중이었다. 스튜어트와 에드워즈의 오른쪽 후방 4,600m 해상에서는 필즈베리가 북상하고 있었고 트롬프는 스튜어트의 후방 7,300m 거리에서 북상 중이었다.

미치시오와 아라시오는 스튜어트 및 에드워즈와 필즈베리 사이로 뛰어들었다.  미치시오는 오전 2시 19분에 중앙의 스튜어트를 향해 3,500m 거리에서 포격을 가했는데 그 직후 연합군의 십자화망에 걸려들었다. 동쪽에서 북상하던 필즈베리가 오전 2시 20분에 탐조등으로 미치시오를 비추었다. 그러자 스튜어트는 침로를 85도로 꺾으면서 4인치 주포로 사격을 가했고 동시에 우현에서 어뢰 6발을 발사했으나 빗나갔다. 존D에드워즈도 4인치 주포로 사격을 가하면서 우현에서 어뢰 6발을 발사했으나 빗나갔다. 필즈베리 또한 좌현에서 어뢰 3발을 발사했으나 역시 빗나갔다. 발리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던 패럿은 오전 2시 19분에 해안에 좌초하면서 전투에 참가하지 못했다. 좌초하는 순간 갑판에 서있던 부사관 1명이 바다로 떨어졌다. 이 부사관은 발리에 상륙했다가 구조되어 수라바야에서 다시 패럿에 합류했다. 패럿은 오전 2시 26분에 가까스로 좌초상태에서 빠져 나왔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포탄에 놀란 미치시오와 아라시오는 뱃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라시오는 무사히 도망쳤으나 미치시오는 그렇지 못했다. 존D에드워즈의 4인치 포탄 1발이 미치시오의 기관실을 분쇄했다. 이어서 필즈베리와 트롬프의 주포탄이 미치시오의 중앙 대공포좌와 함교에 잇달아 명중했다. 미치시오에서는 화재가 발생했으며 후갑판이 거의 수면에 닿을 정도로 낮아진 상태에서 동력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미치시오의 전사자는 13명, 부상자는 83명이었다.

미치시오는 연합군의 판단착오 덕분에 살아남았다. 자신들이 열세라고 착각하고 있던 연합군은 미치시오를 끝장내려고 무리하기보다 피해를 준 것으로 만족하고 그대로 북상하여 전장을 벗어났다. 겨우 살아남은 미치시오는 날이 밝자 아라시오에게 이끌려 마카사르로 가서 임시수리를 받은 다음 일본으로 향했다. 미치시오는 1942년 10월 말에 전열에 복귀했다. 바둥해협해전에서 일본구축함이 발사한 5인치 함포탄은 아사시오 310발, 오시오 217발, 아라시오 73발, 미치시오 62발이다.

3시간 후 7척의 네덜란드 어뢰정으로 이루어진 제3파가 바둥해협에 진입했다. 수라바야를 출항할 당시에는 9척이었으나 도중에 2척이 탈락했다. 어뢰정들은 북상하면서 열심히 적을 찾았으나 해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어뢰정 위에서는 시야가 좁아서 제대로 수색할 수 없었다. 결국 어뢰정들은 적의 모습을 찾지 못한 채 남쪽으로 철수했다.

20일 동틀녘에 트롬프는 미국구축함 4척과 만났다. 그때 마카사르에서 날아온 일본육상공격기 9대가 공격해 왔으나 무사히 피했다. 함정들은 전투기를 요청했으나 전날의 공중전 이후 수라바야의 전투기 세력은 무력화된 상태였다.

이로써 바둥해협 해전은 연합군의 패배로 끝났다. 연합군은 구축함 1척(피에타인)이 산소어뢰에 맞아 격침되고 경순양함 1척(트롬프)이 5인치 포탄 11발을 맞아 큰 피해를 입었으며, 구축함 1척(스튜어트)이 역시 5인치 포탄에 맞아 가벼운 피해를 입었다. 일본군은 격침된 함정은 없었으며 구축함 1척(미치시오)이 구축함과 트롬프의 포격으로 큰 피해를 입고 구축함 2척(아사시오, 오시오)과 수송선 1척(사사고마루)이 역시 포격을 받아 가벼운 피해를 입었다. 연합군은 일본선단의 속력을 잘못 추정함으로써 상륙이 끝난 이후에야 전투에 돌입했을 뿐 아니라 우세한 전력을 동원하고서도 분산투입하는 바람에 패배했다.

바둥해협 해전은 자바해 해전의 으스스한 예고편이었다. 일본구축함 아사시오와 오시오는 압도적인 열세 상황에서 기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감투정신을 발휘하면서 주도권을 유지했다. 전투력 또한 대단하여 자신들은 가벼운 피해만을 입으면서 피에타인을 격침하고 트롬프를 대파시켰으며 사사고마루를 가벼운 피해로 지켜내었다. 자바해 해전의 승부를 가르게 되는 93식산소어뢰 또한 피에타인을 격침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자바섬 바로 동쪽에 있는 발리의 덴파사르 비행장을 점령하면서 일본기들은 자바 남쪽의 인도양을 통해 자바로 증원되는 병력과 보급품을 실은 선박을 마음껏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자바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항구였던 칠라찹도 일본 육상공격기의 공격권 내로 들어왔다. 이제 자바는 고립되었다. 발리가 함락되자 웨이벌 장군은 ABDACOM의 수명이 길어야 2주일쯤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낙관적인 전망이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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