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바둥해협 해전(2) - 피에타인 침몰
작전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도먼 제독의 제1파는 18일 저녁에 칠라찹을 나섰는데 오후 10시에 네덜란드구축함 코테네어가 항구 입구에서 좌초했다. 코테네어는 작전에서 빠져 수리차 수라바야로 가야만 했다.
항구를 빠져나온 도먼 제독의 함대는 19일 하루동안 22노트의 속력으로 동진했으며 오후 6시 31분에 전투대형으로 바꾸었다. 선두에 드루이터가 서고 약 900m 후방에 자바가 뒤따랐다. 그뒤로 약 5,000m 후방에 피에타인, 다시 약 4,600m 후방에 존D포드와 포프가 뒤따랐다. 당시 피에타인과 미국구축함 사이에 간격이 이렇게 많이 벌어진 이유는 불명확하다. 미해군과 네덜란드해군 사이의 공통신호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익숙한 함정끼리 함께 행동하라고 네덜란드구축함과 미국구축함의 간격을 띄웠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코테네어가 탈락한 이상 피에타인은 무조건 미국구축함과 함께 행동해야만 했다. 미국구축함과 피에타인 사이의 간격은 비극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
도먼 제독의 함대는 19일 오후 9시 25분에 발리 남단의 타펠곶을 지나자 침로를 25도로 잡고 속력을 27노트로 올려 바둥 해협으로 진입했다. 바다는 잔잔했으나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으며 달빛도 없어서 칠흑같이 어두웠다.
오후 10시 20분에 자바의 견시가 발리 해안쪽에서 희미한 함영 3개를 발견했다. 확신이 없었던 자바의 함장이 드루이터의 도먼 제독에게 보고하자 도먼 제독은 즉시 공격명령을 내렸다. 10시 25분에 자바는 탐조등을 켜는 것과 동시에 적에게 조명탄을 발사했다. 이어서 150mm 함포가 2,000m 의 근거리에 있는 표적을 향해 불을 뿜었다.
자바가 발견한 함영은 제8구축대제1소대(아사시오, 오시오)와 9,258톤짜리 수송선 사사고마루로서 발리에 병력을 상륙시킨 다음 주정을 회수하기 위하여 남아있다가 이제 회수를 마치고 마카사르로 돌아가기 위하여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자바의 공격은 완전한 기습이었으나 오랜 훈련을 통해 단련된 일본군은 침착하고 재빠르게 반응했다. 오시오에 승좌하고 있던 제8구축대사령 아베 도시오 대좌는 반격명령을 내린 다음 구보 제독에게 적 순양함과 교전이 벌어졌다고 보고했다.
아사시오는 즉시 탐조등을 켜서 자바를 포착하고 포격을 시작했다. 자바도 아사시오의 탐조등을 향해 40mm 보포스 대공포로 사격을 가했으나 서로 명중탄을 내지 못했다. 이제 아사시오와 오시오는 속력을 올리면서 동쪽으로 변침하여 네덜란드순양함에 도전했다.
도먼 제독은 침로를 약간 북동쪽으로 꺾어 일본구축함들이 자신의 진로를 T자형으로 누르지 못하게 하면서 포격전을 벌였다. 자바는 주로 아사시오와 교전했고 드루이터는 오시오와 교전했다. 아사시오는 자바의 좌현 후방함체에 1발의 명중탄을 기록했으나 피해는 가벼웠다. 자바는 사사고마루에 1발의 150mm 포탄을 명중시켰으나 역시 피해는 가벼웠다. 오시오와 드루이터는 서로 명중탄을 내지 못했다.
수분간 짧게 지속된 포격전은 네덜란드순양함들이 고속으로 북상하여 전장을 빠져나가면서 종결되었다. 네덜란드 순양함들은 적의 호위함정을 수송선으로부터 끌어낸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아직 충분히 속력이 붙지 않은 아사시오와 오시오는 추격을 포기했다.
바둥해협 해전. 제1단계. <History of U.S. Naval Operations in World War II, Vol. III: The Rising Sun in the Pacific, 1931--April 1942> P.323
순양함열의 5,000m 후방에서 따라오던 네덜란드구축함 피에타인은 위험한 상태에 있었다. 앞서가던 순양함은 전장을 이탈했고 뒤따르는 미국구축함은 4,600m 나 떨어져 있었다. 결국 피에타인은 혼자서 일본구축함 2척과 싸워야했다.
아사시오와 오시오가 순양함들과 싸우는 사이 전장에 접근한 피에타인은 좌현 쪽으로 수송선 사사고마루를 발견하고 어뢰 3발을 발사했으나 빗나갔다. 잠시 후인 오후 10시 30분에 아사시오와 오시오를 발견하자 피에타인은 어뢰 2발을 발사하고 포격을 가했으나 역시 빗나갔다. 함장 촘프 소령은 연막을 피우면서 우현으로 선회하라고 명령했다.
잠시 후 미국구축함들도 전장에 도착했다. 앞장 선 존D포드는 오후 10시 37분에 사사고마루를 발견하고 좌현의 어뢰 3발을 발사했고 잠시 후 뒤따르던 포프도 2발을 발사했으나 모두 빗나갔다. 존D포드와 포프는 사사고마루에 포격을 가하여 몇 발을 명중시켰다. 그러면서 미국구축함들은 일본구축함 2척과 싸우던 피에타인에게 접근했으나 도움을 주기에는 너무 늦었다.
미국구축함이 사사고마루를 공격하면서 북상하는 동안 피에타인은 좌현 900m 까지 접근한 아사시오와 포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피에타인이 왼쪽으로 변침하는 순간 아사시오의 5인치 포탄 2발이 명중했다. 1발은 탐조등에 맞으면서 화재를 일으켰다. 다른 1발은 후방 보일러실의 증기파이프를 박살내면서 동력을 끊어 속력을 급속히 떨어뜨렸다. 보수반의 노력으로 동력은 복구되었으나 원래 속력이 나오지 않았고 일본군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사시오는 근거리에서 산소어뢰를 발사했고 그중 1발이 오후 10시 40분에 피에타인의 좌현에 명중했다. 피에타인은 침몰했으며 함장 촘프 소령을 위시한 승조원 6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로써 93식 산소어뢰는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네덜란드구축함 피에타인. https://en.wikipedia.org/wiki/HNLMS_Piet_Hein_(1927)
피에타인이 전열에서 탈락하자 이제 미국구축함 2척은 일본구축함 2척과 대결하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구축함 2척끼리의 대결이었지만 바둥해협 해전 당시 미국구축함과 일본구축함의 전력 차이는 상당했다.
우선 제1차 세계대전 직후 건조된 낡은 클렘슨급인 미국구축함의 만재배수량은 1,310톤인데 비하여 1939년부터 취역한 신조함인 아사시오급 일본구축함의 만재배수량은 2,410톤으로 1.8배가 넘었다. 실제로 탐조등에 떠오른 일본구축함의 우람한 모습을 본 미국구축함의 승조원들은 자신이 일본순양함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장 또한 차이가 많이 났다. 주포의 경우 클렘슨급은 15kg짜리 포탄을 쏘는 4인치 함포 4문인데 반하여 아사시오급은 23kg짜리 포탄을 쏘는 5인치 함포 6문으로 일제발사시 투사량이 2.3배에 달했다. 어뢰 또한 클렘슨급이 211kg 짜리 탄두를 가진 21인치(533mm) 어뢰 12발을 가진 반면 아사시오급은 490kg짜리 탄두를 가진 직경 610mm의 93식산소어뢰를 예비어뢰 포함 16발이나 보유했다. 따라서 탄두 무게만으로도 3배 이상 우월했으며 어뢰의 성능까지 고려한다면 격차는 더 벌어졌다.
클렘슨급 구축함 존D포드. https://en.wikipedia.org/wiki/USS_John_D._Ford_(DD-228)
아사시오급 구축함 아사시오. https://en.wikipedia.org/wiki/Japanese_destroyer_Asashio_(1936)
일본구축함은 미국구축함이 탈출해야 할 북쪽 항로를 막고 있었다. 선두의 존D포드에 승좌하고 있던 제59구축함분대장 에드워드 파크 중령의 명령에 따라 존D포드는 연막을 뿌리면서 좌현으로 선회했고 포프도 뒤를 따랐다. 반시계 방향으로 선회하다가 일본구축함들이 꽁무니에 따라붙으면서 북쪽 통로가 열리면 그대로 탈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베 대좌는 넘어가지 않았다. 일본구축함들은 뒤따라 선회하지 않고 남동쪽으로 변침함으로써 여전히 북쪽 통로를 틀어막고 있었다.
선회를 마친 미국구축함들이 남동쪽으로 향하자 일본구축함들은 거리를 좁히면서 포격을 가했고 미국구축함들도 반격했다. 일본구축함의 포격은 위협적이어서 여러번 협차가 나왔으나 다행히 명중탄은 없었다. 압도적인 화력의 열세를 절감한 파커 중령은 남쪽으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오후 10시 5분에 선두의 존D포드가 갑자기 좌현으로 꺾은 다음 속력을 늦추면서 다시 연막을 뿌렸다. 그 순간 포프가 우현 뒷쪽에 나타난 오시오에게 5발의 어뢰를 발사하고는 존D포드를 추월하여 남쪽으로 탈출했다. 어뢰는 모두 빗나갔다. 존D포드의 갑작스런 변침, 감속, 연막 살포에 이어 포프가 어뢰로 반격하자 일본구축함은 멈칫하면서 거리를 벌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존D포드는 다시 증속하여 쏜살같이 남쪽으로 달아나 칠라찹으로 향했다. 이로써 오후 11시 10분에 제1파 공격이 끝났다.
미국구축함들이 탈출한 직후 캄캄한 밤에 연막 속에서 수색하던 아사시오와 오시오는 서로를 적으로 알고 포탄을 교환했다. 양함은 공히 새로 나타난 적의 함정을 포격으로 격침했다고 보고했으나 사실 서로를 노린 포탄은 모두 빗나갔다.
존D포드와 포프는 피에타인의 조난자들에게 뜻밖의 선물을 주었다. 포격전 와중에 일본군의 포탄 파편이 존D포드의 구명정이 매달려 있던 뒷쪽 밧줄을 끊었다. 승조원이 달려가 덜렁거리는 구명정의 앞쪽 밧줄도 끊자 구명정은 배밖으로 떨어졌는데 뒤집히지 않고 바로 착수했다. 나중에 피에타인의 생존자 13명이 이 구명정을 발견하고 기어 올랐다. 그들은 엔진의 시동을 걸려고 했으나 연료가 없었다. 화재를 피하려고 휘발유를 빼 둔 것이었다. 날이 밝자 생존자들은 주변에 떠다니는 드럼통을 발견하고 건져서 뚜껑을 열었는데 거짓말처럼 휘발유가 들어 있었다. 이 휘발유는 포프의 구명정을 위한 것으로 역시 포격전 와중에 화재 발생을 막으려고 버린 것이었다. 엔진에 휘발유를 채운 생존자들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피에타인의 조난자 20명을 더 구한 다음 자바로 돌아갔다.
제1파의 공격은 병력분산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우세한 병력을 제파공격으로 분산한 것도 모자라 도먼 제독은 제1파의 전력마저 분산시켰다. 따라서 실제로 제1파의 공격은 3개의 독립적인 전투로 이루어졌다. 첫번째는 2척의 경순양함과 2척의 일본구축함 사이의 대결로 유일하게 우세했으나 별다른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두번째는 피에타인이 강력한 일본구축함 2척과 맞서게 되었으며 압도적인 열세에 몰린 피에타인은 격침되었다. 세번째는 구식인 미국구축함 2척이 강력한 일본구축함 2척과 역시 열세의 싸움을 강요당했으며 미국구축함 2척이 피해없이 달아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북쪽에서 경계 중이던 나가라 함상의 구보 제독은 적 순양함과 교전 중이라는 아베 대좌의 보고를 듣자 제21구축대(와카바, 하츠시모, 네노히)를 이끌고 남하를 시작했으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는 전장에 더 가까이 있던 제8구축대제2소대(미치시오, 아라시오)에게 즉시 남하하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에 따라 사가미마루를 호위하여 마카사르로 철수 중이던 미치시오와 아라시오는 반전하여 남하하고 사가미마루는 혼자 마카사르로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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