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2번오솔길(Trail 2) 전투


(오리온-바각 방어선.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PI/USA-P-PI-18.html#18-1 P.325)

제2필리핀군단에 대한 일본제65혼성여단의 공격은 C구역에 집중되었다. 길이가 4,100m 인 C구역 전선의 서쪽에서 1/4 지점에는 사맛산의 동쪽 능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2번오솔길이 있었는데 2번오솔길은 제2필리핀군단의 방어 지역에서 동부도로를 제외하고는 남쪽으로 가장 쉽게 내려갈 수 있는 통로였다.


(2번오솔길 전투.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PI/USA-P-PI-18.html#18-2 P.333)


C구역 사령관인 제31사단장(PA) 블루멜 준장은 2번오솔길을 중심으로 서쪽 1/4에는 제51사단의 잔존병 1,500명으로 이루어진 제51전투단을 배치하고 동쪽 3/4에는 자신의 사단인 제31사단을 배치했다. 가장 중요한 방어목표인 2번오솔길 좌우 550m 에는 개인호를 여러개 파서 강력한 방어준비를 갖추었다.


26일 아침에 방어선을 시찰한 블루멜 준장은 방어선의 동쪽 끝에 배치된 제31보병연대제1대대가 이동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대장에게 물어보니 그날 새벽에 명령을 받았는데 A구역으로 이동하여 제31보병연대 주력에 합류하라는 것이었다. 블루멜 준장은 금시초문이었으므로 자신의 직접 명령이 있기 전에는 방어선을 떠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오전 10시에 방어선의 중앙에 도착한 블루멜 준장은 깜짝 놀랐다. 2번오솔길의 동쪽을 지키던 제33보병연대가 통째로 사라져 그 중요한 방어선이 텅 비어 있었다. 사라진 연대를 찾아 헤매던 블루멜 준장은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제33보병연대가 오전 8시에 방어선을 떠나 D구역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원래 D구역을 지키던 제57보병연대(PS)가 극동미육군사령부의 예비대가 되어 후방으로 빠졌기 때문이었다.

블루멜 준장은 예비대인 제32보병연대제2대대와 보병으로 개편된 제31포병연대본부포대 병력 60명을 2번오솔길 동쪽으로 파견했다. 이들이 방어선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30분이었다. 따라서 거의 10시간동안 그 중요한 방어선이 비어 있었다. 그 사이 일본군이 공격했으면 텅빈 방어선을 지나 단번에 리마이까지 도달했을 것이다.


방어선의 빈틈을 메운지 30분이 지난 오후 6시에 제2필리핀군단장 파커 장군이 전화를 걸어와 아침에 블루멜 준장이 이동을 불허했던 제31보병연대제1대대를 A구역으로  보내라고 명령했다. 대신 D구역으로부터 제41보병연대(제1대대 감편)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도착시간이 다음날 오후였으므로 블루멜 준장은 예비대에서 제32보병연대의 마지막 대대를 빼내어 제31보병연대제1대대가 떠난 자리를 메꾸어야 했다. 그리하여 26일 밤에 블루멜 준장은 2번오솔길 동쪽의 긴 방어선을 제32보병연대의 3개 대대와  제31포병연대본부포대만으로 지켜야 했다. 예비대라고는 소총으로만 무장한 제31공병대대 450명이 모두였다.


26일 오후 4시에 제65여단은 제14군사령관 혼마 중장으로부터


"사맛산과 오리온 지역으로 공격하여 바각 지역을 공격하는 기무라 지대와 연결하라."


는 명령을 받았다. 오후 7시에 일본제65여단의 정찰대가 2번오솔길로 남하하다가 총격을 받고 물러났다.


제65여단장 나라 중장은 공격의 중점을 C구역에 두었다. 가장 중요한 목표인 2번오솔길은 다케치 대좌의 보병제9연대가 맡을 것이었다. 그 동쪽에서는 보병제141연대가 공격할 것이었다. 보병제9연대의 서쪽은 요시자와 마사타로 대좌의 보병제142연대(제1대대 감편)가 맡아 C구역과 D구역의 경계선을 공격할 것이었다. 동해안에서는 다나베 타다지 소좌의 보병제142연대제1대대가 견제공격을 담당할 것이었다. 야포는 후방에 있어 화력지원이 불가능했다.


27일에 실시된 제65여단의 공세는 부대 이동에 시간이 걸려 오후 3시에 시작했다. 우선 동해안의 다나베 소좌가 지휘하는 보병제142연대제1대대가 동부도로를 따라 남하하여 미-필리핀군의 주의를 끌었다. A 구역을 지키던 제31보병연대(PA)가 몇 발의 총격을 가하자 다나베대대는 진격을 멈추었다. 다나베 소좌는 이로써 미-필리핀군의 주의를 충분히 끌었다고 생각했으나 정작 제31보병연대는 이것을 적의 공격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다나베대대를 제외한 보병제142연대 주력은 오후 4시에 C구역과 D구역의 경계선을 공격했다. 일본군은 방어선에 접근하여 거센 총격을 받자 진격을 멈추었다.


주공을 맡은 보병제9연대와 보병제141연대는 필러강과 방어선 사이의 작은 마을인 카폿을 노렸다. 양 연대는 해가 어스름하게 넘어갈 때쯤 공격을 시작했는데 대부분 필러강을 건너는데 실패했다. 단지 보병제9연대의 1개 대대만이 필러강을 건너 방어선의 70m 전방에 위치한 대나무숲까지 전진하는데 성공했다.

전방에서의 보고를 받은 나라 중장은 부하들이 예상보다 강한 저항에 직면했다는 것을 알았으나 27일 밤에도 여전히 자신이 미-필리핀군의 주저항선이 아닌 전초선을 공격하고 있다고 믿었다.


27일 저녁이 되자 파커 장군이 약속했던대로 제41보병연대(제1대대감편)가 C구역에 도착했다. 블루멜 준장은 제3대대를 2번오솔길 동쪽 1,100m 에 걸쳐 배치했다. 기존에 배치되어 있던 제31보병연대제2대대는 방어선을 물려주고 동쪽으로 방어지역을 옮겼다. 제41보병연대제3대대에는 기관총이 없었으므로 제32보병연대제2대대는 화기중대인 H중대를 넘겨주고 떠났다.

제41보병연대F중대는 전선 바로 뒷쪽에서 2번오솔길에 주둔하여 적의 기습적인 강행돌파에 대비했다. F중대를 제외한 제41보병연대제2대대는 연대예비대가 되었다. 

따라서 C구역의 동쪽은 제31보병연대(H중대 감편), 중앙은 제41보병연대(제31보병연대H중대와 제31포병연대지휘포대 증편), 그리고 2번오솔길 서쪽은 제51전투단이 지켰고, 전선 바로 뒤의 2번오솔길상에 제41보병연대F중대가 주둔했다.


28일 하루동안 나라 중장은 공격을 중단하고 야포의 도착을 기다리면서 전선을 재편했다. 그는 공격의 중점을 서쪽으로 옮기기로 하고 보병제9연대의 동쪽에 있던 보병제141연대에게 서쪽으로 이동하여 보병제142연대와 보병제9연대 사이에서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다나베대대는 여전히 동해안을 맡았다.


29일 공격은 오후 6시 30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서쪽에서 진격한 보병제142연대는 티아위르강을 건너 D구역의 제22보병연대 정면으로 공격했으나 저지당했다. 보병제141연대는 자정이 되어서야 도착했기 때문에 공격에 참가할 수 없었다.


2번오솔길을 노린 보병제9연대의 공격은 좀 더 위협적이었다. 보병제9연대 주력은 필러강을 건너 전날밤부터 방어선 전방 70m 지점에 위치한 대나무숲에 숨어있던 대대와 합류했다. 여기서 일본군은 필리핀군 방어선을 향하여 참호를 파기 시작했다. 참호가 필리핀군의 철조망에 닿자 연대장 다케치 대좌는 화력지원을 요청했다. 일본군의 야포가 1시간의 준비포격을 마치자 보병제9연대가 일제히 참호에서 일어나 바로 눈앞의 필리핀군 방어선으로 돌격하면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2번오솔길과 그 동쪽을 지키던 제41보병연대는 제32보병연대H중대의 기관총 사격에 힘입어 일본군의 돌격을 가까스로 저지했다. 2번오솔길 자체를 지키던 K중대는 백병전까지 치르는 격전 끝에 일본군을 막았다. 오솔길 서쪽의 제51전투단은 일본군에게 밀려 전선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증원군이 도착하여 일본군을 몰아내었다. 날이 밝았을 때 필리핀군은 방어선 140m 이내에서 100구 가까운 일본군 시체를 확인했다.


30일에는 일본군이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전투에 참가한지 1달이 넘어가면서 제65여단의 피해도 누적되었으며 특히 장교의 피해가 컸다. 이에 따라 전투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었으며 살아남은 병사들의 피로 또한 극심했다. 설상가상으로 30일 아침에 제65여단의 핵심 전력인 보병제9연대를 31일 밤까지 제16사단으로 복귀시키라는 제14군사령관 혼마 중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어쨌든 공격은 재개해야 했으므로 동해안에 있던 다나베대대가 보병제9연대를 대신하기 위하여 불려왔다. 전력 약화를 보상하기 위하여 나라 중장은 충실한 항공 및 야포지원을 계획했다.


31일 공격은 오후 5시에 일본항공기가 판단강 남쪽에 배치되어 있던 제2필리핀군단 포병단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1시간에 걸친 공습이 끝나자 일본야포가 90분에 걸쳐 2번오솔길 좌우를 연대예비선까지 조직적으로 포격했다. 오후 7시 30분이 되자 포격이 멈추었고 보병이 이동을 시작했다. 블루멜 준장은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야포가 포격을 멈추자 C구역의 미-필리핀군 야포들이 일제히 포문을 열어 필러강 한가운데에 포탄을 쏟아부었다. 마른 강바닥을 건너던 일본군은 갑작스런 포격에 큰 피해를 입었으며 간신히 강을 건넌 일본군에게는 엄청난 기관총 세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으로 공격은 끝났다.


보병제9연대장 다케치 대좌는 전투의 혼란통에 대나무숲에서 빠져나와 북상할 생각이었지만 일본군의 공격이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로 끝나버리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부상자가 많았기 때문에 적의 눈앞에서 연대가 한꺼번에 탈출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보병제9연대는 밤새 1개 대대만 철수시킬 수 있었다. 일단 날이 밝으면 이동이 불가능했고 밤이 되어서야 다시 1개 대대가 철수했다. 따라서 2일 아침에도 대나무숲에는  보병제9연대의 1개 대대가 남아 있었다.


2일 아침에 C구역 사령관 블루멜 준장은 대나무숲에 역습을 감행했다. 2.95인치 산포 1개 포대가 300m 거리에서 대나무숲에 직사를 가한 다음 제31공병대대(PA) 450명이 방어선을 넘어 대나무숲으로 진격했다. 방어선에 포진한 병력이 소화기 사격으로 엄호해 주었다. 공병대대는 대나무숲 입구에서 강력한 저항을 받아 진격을 멈추었다. 대나무숲에는 블루멜 준장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일본군 1개 대대가 숨어 있었다. 즉시 제41보병연대에서 1개 대대가 증원되었으나 역시 공격에 실패했다. 보병대대와 공병대대는 대나무숲 앞에 참호를 팠다.


3일 아침이 되자 보병대대와 공병대대는 대나무숲으로 쳐들어갔으나 일본군은 밤새 달아난 후였다. 이로써 보병제9연대는 탈출에 성공했으나 연속된 전투로 큰 피해를 입어 중대당 평균 병력이 60명으로 줄어들었다. 필리핀군은 대나무숲을 통과한 후 그대로 북상하여 필러-바각도로에서 남쪽으로 140m 지점에 도달한 다음 전초선을 형성했다. 이로써 2번오솔길에 대한 위협은 사라졌다.


3번의 공격실패로 큰 타격을 입은 제65여단은 이후 8일까지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피해를 추스르고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2월 8일이 되자 공격준비가 완료되어 다음날인 9일에 공격을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이날 제14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공격을 중단시켰다. 이후 밤 11시 30분에 다시 제14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제65여단에게 필러-바각도로 북쪽으로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잇따른 공격실패로 전력이 소진된 제14군이 바탄공략을 포기하고 봉쇄로 방침을 바꾼 것이었다. 단지 제65여단의 공격 실패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바탄반도 서해안에 상륙했던 보병대대 2개는 증발했으며 1월 26일에 제1필리핀군단을 공격했던 다나카지대에도 참극이 발생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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