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보 섬 해전

 

(제1편에서 과달카날 해안의 렉키 일행이 지켜본 사보 섬 해전 광경)

 

렉키와 동료들은 상륙 이틀째 밤에 과달카날 앞바다에서 벌어지는 해전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터너 제독이 지휘하는 미해군이 일본해군을 싹쓸이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 해전은 미해군 사상 최악의 패배로 불리는 사보 섬 해전이었습니다.

미해군 전사를 쓴 새뮤얼 모리슨 제독은 이 사보 섬 해전 때문에 애당초 미군의 승리로 간단하게 끝났을 과달카날 전투가 6개월에 걸친 사투가 되었다고 평가했지요.

 

과달카날 상륙 당시 라바울에 있던 일본제8함대 사령관 미카와 구니치 제독은 상륙보고를 받자마자 중순양함 5척(죠카이, 아오바, 카고,기누가사, 후루다카), 경순양함 2척(덴류, 유바리), 그리고, 구축함 1척(유나기)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수상함대를 이끌고 과달카날로 향합니다.

도중에 일본함대는 미군 정찰기에게 두 번이나 발견되지만 그때마다 침로를 바꾸는 척해서 정찰기 조종사의 눈을 속이는데 성공하고, 9일 새벽 1시에 과달카날 앞바다에 도달합니다.

당시 과달카날 앞바다를 지키던 미함대는 중순양함 6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8척으로 일본함대보다 우세했으나, 이들은 3개의 그룹으로 나뉜 채로 경계임무에 임하다가 일본함대에게 기습을 당해 차례로 격파당하고 맙니다.

게다가 당시  미함대의 승무원들은 대부분 24시간 이상 연속 근무로 피로가 극도로 쌓인 상태였습니다.

 

1942년 8월 9일 새벽 1시 38분에 일본함대가 기습적으로 산소어뢰를 발사한 것을 시작으로 불과 40분간 지속된 일방적인 해전에서 일본함대는 연합군의 중순양함 4척(캔베라, 빈센즈, 아스토리아, 퀸시, 이중 캔베라는 호주해군 소속)을 격침하고, 중순양함 1척(시카고)과 구축함 2척(랄프 탤벗, 패터슨)을 대파했습니다.

연합군 전사자는 1,023명, 부상자는709명에 달하여 미해군이 지금까지 겪은 사상 최악의 패배로 기록됩니다.

(물론 진주만 기습의 피해가 더 크지만 미국은 진주만 기습을 해전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진주만 기습을 하와이 해전이라고 부릅니다.)

일본함대의 피해는 중순양함 죠카이와 아오바가 소파되어, 전사 51명, 부상 31명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날이 밝으면 미군의 함재기들이 공습을 가할까 봐 두려워한 미카와 제독은 무방비 상태의 미군 수송선단을 남겨두고 그대로 퇴각합니다.

 

과달카날 상륙을 엄호했던 항모기동부대는 해전이 벌어지기 몇 시간 전에 이미 철수했고, 이제 남은 호위함대마저 사보 섬 해전으로 격파되어 버리자 상륙작전을 현장에서 총지휘하던 켈리 터너 해군소장은 8월 9일 하루동안 하역작업을 초스피드로 실시하여 원래 싣고왔던 2달치 보급품 중 1달치만 양륙하고는 9일 오후에 서둘러 과달카날을 떠납니다.

그리하여, 주인공 렉키 일병이 포함된 해병 제1사단은 1달치의 보급품과 함께 그대로 과달카날 섬에 고립되어 버립니다.

 

(제1편에서 수송선단이 떠나버리고 텅 빈 바다를 황당하게 바라보는 해병대원들)

 

극에서는 마치 밤 사이에 수송선단이 모두 떠난 것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로 수송선단은 9일 하루동안 최대한 빠른 속도로 보급품을 하역하고 오후에 과달카날 앞바다를 떠났습니다.

로버트 렉키의 원작에도 그날 아침부터 열심히 보급품을 내륙의 기관총 진지에 옮겨놓고 해안에 돌아와보니 수송선단이 떠나버린 상태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해병대원들의 대사 가운데에서 주인공 렉키 일병의 대대가 타고 온 병력수송함인 조지 엘리엇이 마치 간밤의 해전에서 격침된 것처럼 묘사한 부분이 나오는데 실제로 조지 엘리엇은 상륙 당일 낮에 일본기의 폭격을 받아 불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일본함대가 과달카날에 접근할 때 마지막 단계에서 불타는 조지 엘리엇의 화염을 기준으로 침로를 정했지요.

 

사보 섬 해전에서 수송선단은 천만다행으로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미군의 수송선단에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미카와 제독은 사보 섬 해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도 일본연합함대 사령관인 야마모토 제독에게 질책을 받았다고 합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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