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침몰
리펄스는 가노야 항공대의 공격으로 12월 10일 12시 22분에서 26분 사이에 5발의 어뢰를 얻어맞고 치명타를 입었다.
함장 테넌트 대령은 리펄스가 살아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함체가 왼쪽으로 10도까지 기울어지자 예비 명령을 내렸다.
"전원 갑판으로. 퇴함 준비. 하느님께서 제군과 함께 하시길."
("All hands on deck. Prepare to abandon ship. God be with you.")
모든 구역에서 승조원들이 쏟아져 나와 갑판으로 올라왔다.
테넌트 함장은 기울기가 30도에 이르자 명령을 내렸다.
"퇴함"
("Abandon ship.")
승조원들은 바다에 뛰어들었다.
명령에 따라 모든 승조원들은 24시간 전부터 고무로 만든 구명동의를 입고 있었다.
입으로 공기를 불어넣어 부풀려야 하는 구식이었으나 부풀리는 데에 몇 초면 충분했다.
일부 승조원은 칼리뗏목을 탔다.
모터가 달린 구명정은 띄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사용하지 못했다.
(칼리 뗏목. http://cs.finescale.com/fsm/modeling_subjects/f/7/t/153205.aspx?pi240=3)
퇴함은 바쁜 와중에도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졌으며 수영이 능숙한 승조원들은 수영을 못하면서 구명동의를 잃어버린 승조원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구명동의를 벗어주었다.
몇 분 만에 수백명의 승조원들이 안전하게 함을 떠났다.
많은 승조원들이 퇴함 과정에서 중요한 소지품들을 잃었는데 해군성 사진사인 아브라함 대위는 퇴함 과정에서 전투 장면을 찍은 귀중한 필름을 몽땅 분실했다.
리펄스의 침몰이 빨랐기 때문에 장갑판 아래의 탄약고, 기관실 및 보일러실에 있던 승조원들은 반응 시간에 따라 생사가 갈렸다.
함의 아래쪽에서 탈출하려면 해치를 열면서 여러 층을 통과해 올라와야 했는데 주 장갑판에 달린 해치는 무거웠기 때문에 특히 배가 기울어진 상태에서는 아래에서 열지 못할 위험이 있었다.
뇌격의 여파로 스피커가 작동하지 않는 곳이 많았기 때문에 피격 직후 함이 기울어지는 것을 느끼자마자 퇴함 명령에 관계없이 탈출을 감행한 승조원은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책임감이 강하여 퇴함 명령을 기다리다가 탈출 시간을 놓치거나 아니면 일찍 출발했음에도 운이 나빴던 승조원은 갑판에 도달하지 못했다.
리펄스에서는 후드와 달리 대규모의 내부 폭발이 없었음에도 전체 승조원의 40% 가까운 전사 및 실종자를 기록했는데 대부분 함체 깊숙한 곳에 있다가 탈출에 실패한 경우였다.
리펄스는 왼쪽으로 쓰러진 후 뒤쪽부터 가라앉았다.
수심이 60m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함미가 먼저 바닥에 닿았고 이어서 함수가 사라졌다.
그때 시간이 오후 12시 33분..리펄스가 최초의 어뢰를 맞은지 11분, 마지막 어뢰를 맞은지 불과 7분 후였다.
시간이 급박했기 때문에 부상자를 따로 챙길 시간이 없어서 희생자가 늘어났다.
프린스오브웨일스는 리펄스와 달리 가노야 항공대의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고도 1시간을 더 버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었다.
따라서 부상자들까지도 칼리뗏목에 태우거나 구축함 익스프레스로 옮겨 퇴함시킬 수 있었다.
오후 1시에 구축함 익스프레스가 프린스오브웨일스의 우현으로 다가와 건널판자를 걸쳤다.
그러자 일단의 장교들이 건너갔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승조원 일부가 장교들의 등에 대고 쌍욕을 퍼부었다.
장교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으나 이들은 사실 억울했다.
함장 존 리치 대령이 필수 인원이 아닌 장교에게 퇴함을 명했고 이들은 명령에 따라 중요한 서류를 챙겨 익스프레스로 옮겨탔던 것이다.
오후 1시 10분에 퇴함 명령이 떨어졌다.
승조원들은 단정을 묶은 밧줄을 끌러서 배가 가라앉으면 자동적으로 뜨도록 만들었고 단정갑판에 있던 통나무를 묶어놓은 밧줄도 끊었다.
널빤지 약 50장도 배의 양옆으로 던져놓아 퇴함한 승조원들이 잡고 매달릴 수 있게 했다.
퇴함 과정에서 진기한 광경도 벌어졌다.
구내 매점에서는 담배와 초컬릿을 모두 내놓아 마음대로 집어갈 수 있게끔 했으며 심지어는 파운드화와 싱가포르 달러까지 모두 내놓아 퇴함하는 승조원이 한 웅큼씩 집어갔다.
취사병은 그 와중에 샌드위치와 커피를 만들어 퇴함하는 승조원에게 나눠 주었다.
오후 1시 15분부터 프린스오브웨일스의 경사가 심해지면서 우현에 붙어서 부상자를 받아들이고 있던 구축함 익스프레스가 물러서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거대한 전함이 급격하게 왼쪽으로 쓰러질 경우 익스프레스는 우현의 빌지 킬에 부딪혀 전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익스프레스의 함장 카트라이트 소령은 한명의 부상자라도 더 받기 위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우현에 붙어 있었다.
오후 1시 20분 경 프린스오브웨일스가 왼쪽으로 쓰러지자 익스프레스는 재빨리 물러섰다.
프린스오브웨일스의 거대한 우현 빌지 킬이 솟구치면서 익스프레스의 좌현 빌지 킬에 걸렸다.
익스프레스는 우현으로 크게 기울었으나 전복은 면했다.
(빌지 킬. https://en.wikipedia.org/wiki/Bilge_keel)
많은 승조원들이 익스프레스에 가까이 가기 위하여 우현으로 뛰어내렸고 더 많은 승조원들이 상갑판 앞쪽에서 10m 아래의 해면으로 뛰어내렸다.
톰 필립스 제독은 프린스오브웨일스가 전복되기 10분 전 퇴함권유를 받았으나 거부하고 참모들에게 퇴함을 명했다.
참모들은 대부분 목숨을 건졌다.
필립스 제독의 마지막 모습을 본 사람은 함대어뢰관인 힐러리 노만 중령이다.
노만 중령은 침몰 직후 바다에 떠다니는 필립스 제독의 시체를 보았다.
처음에 노만 중령은 시체에 다가가서 유족을 위하여 사관학교 졸업반지를 비롯한 유품을 회수하려 했으나 너무 엽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
대공포를 지휘하던 그레이엄 대위는 구명동의를 입은 채로 바다를 떠돌던 함장 리치 대령을 발견했다.
다가가서 확인해보니 리치 대령은 목이 부러져 숨져 있었다.
그레이엄 대위는 부하들과 함께 리치 대령의 시체를 익스프레스로 끌고 가려고 했으나 너무 힘들어 포기했다.
리치 대령의 전사 소식을 들은 아들 헨리 리치는 자신의 아버지가 함이 가라앉으니 함장으로서 운명을 함께 한다는 따위의 구닥다리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며 톰 필립스 제독이 퇴함 허가를 늦게 내주는 바람에 탈출 기회를 놓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리치 대령은 일단 탈출했다가 프리스오브웨일스가 침몰할 때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프린스오브웨일스의 사망 및 실종자는 전체 승조원의 20% 정도였다.
최후의 시간이 다가왔다.
프린스오브웨일스는 왼쪽으로 쓰러진 다음 완전히 뒤집혀서 배 밑바닥을 드러내더니 함미부터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1941년 12월 10일 오후 1시 24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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