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함락(46)-기무라대대 상륙
46. 기무라대대 상륙
1942년 1월 25일에 제14군 사령관 혼마 중장은 전황을 평가했다. 미-필리핀군은 바탄반도에 주력을 집결시켜 마지막까지 버틸 태세였다. 따라서 필리핀의 나머지 지역을 점령하려고 병력을 분산하는 것보다 바탄반도에 전력을 집중하여 미-필리핀군 주력을 빨리 분쇄하는 것이 필리핀 전역을 일찍 끝내는 길이었다.
바탄반도 공략은 제65혼성여단과 기무라지대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바탄반도 동쪽을 담당한 제65여단의 성과는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서쪽을 맡은 기무라지대는 성공적이었으므로 여기에 병력을 추가하여 전과를 확대하는 것이 바탄반도 전투를 빨리 끝내는 길이었다.
이런 상황판단에 따라 혼마 중장은 1월 25일 오후 6시에 마닐라에 머물고 있던 제16사단장 모리오카 스스무 중장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1. 제16사단장은 보병 약 2개 대대와 독립공병제21연대본부 기간의 부대를 이끌고 마닐라를 떠나 디날루피한에 출두하라. 특히 보병제20연대의 1개 대대와 독립공병제21연대본부는 즉시 올롱가포로 파견하라.
보병제33연대장이 지휘하는 보병 약 1개 대대 기간의 부대는 남부루손에 남아 차후 군직할로 돌려질 것이다.
2. 전차제7연대, 수색제16연대주력, 야포병제22연대주력, 야전중포병제8연대의 1개 대대(1개 중대 감편)를 기간으로 한 부대는 전차제7연대장의 지휘 아래 마닐라와 주변 지역을 방어하라.
(일본군의 바탄상륙.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PI/USA-P-PI-17.html#17-1 P.297)
제16사단장 모리오카 중장은 퀴나완곶 상륙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는 우선 보병제20연대제1대대제1중대(고바야시중대)를 퀴나완곶에 증원하기로 결정했다. 200명으로 이루어진 고바야시중대는 즉시 마닐라를 떠나 전속력으로 북상하여 26일 저녁에 올롱가포에 도착한 후 숨돌릴 틈도 없이 주정 3척을 타고 퀴나완곶으로 향했다. 하지만 부실한 지도를 가지고 운항한 주정승조원이 다시 이들을 엉뚱한 곳에 내려주었다. 이번에는 퀴나완곶에서 북쪽으로 1,800m 정도 떨어진 아냐산-실라임 지역이었다.
아냐산-실라임 지역은 북쪽에서 실라임강이 실라임만으로, 900m 남쪽에서는 아냐산강이 아냐산만으로 흘러가고 중간에 실라임곶이 있었으며 남쪽에 아냐산곶이 아냐산만의 남쪽해안을 이루고 있었다. 즉 북쪽으로부터 실라임만, 실라임강, 실라임곶, 아냐산만, 아냐산강, 아냐산곶으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복잡한 지형은 미-필리핀군에게도 구별이 쉽지 않았다. 실제로 2월 3일에 이 지역에 전신주를 세우던 필리핀 통신병들은 본부로부터 위치가 어디냐는 질문을 받자 북쪽 카노스곶과 남쪽 퀴나완곶 사이의 어딘가라고 대답할 뿐 정확한 위치를 답하지 못했다.
아냐산-실라임 지역 또한 롱고스카와얀곶이나 퀴나완곶처럼 울창한 정글로 덮여 있었으며 지형은 더 험한 편이었다. 서부도로로 연결된 진입로라고는 실라임곶에서 시작되는 차량통행이 불가능한 오솔길 하나가 전부여서 보급이 힘들었다.
(아나샨-실라임 지역.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PI/USA-P-PI-17.html#17-3)
1월 27일 새벽에 엉뚱한 곳에 상륙한 고바야시중대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내륙으로 진출했다. 아냐산-실라임 지역을 맡은 것은 제1경찰연대제1대대였는데 병사들은 일본군의 모습을 보자마자 도망쳐서 대대 전체가 흩어져 버렸다. 달아난 병사들은 다음날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27일 동틀녘이 되어서야 상륙보고를 받은 서부지구사령관 피어스 준장은 흩어져버린 경찰대대를 대신하여 예비대인 제17추격비행대대를 파견했다. 일출 직후 제17추격비행대대가 경찰대대본부에 도착해 보니 아침식사로 끓이던 스프가 아직도 끓고 있었다. 병사들은 경찰대대가 조리하다가 남겨둔 음식으로 식사를 하고는 다시 일본군을 찾아 출발했다. 먹을 것을 발견했다고 해서 수색 도중 갑자기 식사를 즐긴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제17추격비행대대 또한 훈련이 부족했다. 몇몇 병사들은 소총 쏘는 법도 숙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서부도로에서 360m 정도 서쪽으로 진출했을 때 제17추격비행대대는 일본군 정찰대와 조우했는데 일본군은 교전을 회피하고 도망쳤다. 제17추격비행대대는 해안에서 900m 떨어진 지점에서 일본군 방어선을 만나자 진격을 멈추고 참호를 팠다. 저녁에 제2경찰연대제2대대가 증원되었다.
28일 아침이 되자 비행대대와 경찰대대는 공격을 시작했다. 일본군이 별다른 저항없이 후퇴함에 따라 28일 저녁이 되자 비행대대와 경찰대대는 아냐산만이 보이는 곳까지 진출했다.
미군은 아냐산-실라임 지역에 상륙한 일본군의 규모를 과대평가하여 서부도로에 대한 주요 위협으로 생각했다. 서부지구사령관 피어스 준장은 정예보병의 투입을 결정했다. 27일 아침에 일본군을 보자마자 와해되어 버렸던 제1경찰연대제1대대는 28일 저녁까지 달아났던 병사들이 돌아오면서 복구되었다.
29일 아침에 부대대장 아서 비덴슈타인 대위가 지휘하는 제45보병연대제2대대(PS)가 현장에 도착했다. 피어스 준장은 비덴슈타인 대위에게 제1경찰연대제1대대와 제12보병연대제1대대(PA)를 배속해 주었다. 제57보병연대A중대(PS)도 서부도로와 아냐산-실라임 지역 사이의 보급로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고 파견되었다. 비덴슈타인 대위는 당장 적을 공격하는 대신 하루 동안 적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하여 사방으로 정찰대를 보냈다. 그 결과 적이 실라임강 하구에 방어선을 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30일 아침이 되자 제45보병연대제2대대가 실라임강 하구의 일본군 방어선을 향해 공격을 개시했다. 적의 저항은 강력했다. 그때 치명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공격을 지원하던 제88포병연대 D포대의 75mm 야포 4문이 스카우트의 머리 위로 포탄을 쏟아부어 4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을 입었다. 정글이 울창하여 관측이 힘든 상태에서 보병과 포병 사이의 연락이 불충분하여 생긴 일이었다. 이 사태로 공세가 탄력을 잃자 비덴슈타인 대위는 공격을 중단하고 참호를 파라고 명령했다.
당시 비덴슈타인 대위는 제45보병연대제2대대, 제1경찰연대제1대대, 제12보병연대제1대대, 제17추격비행대대, 그리고 제57보병연대 A중대를 지휘하고 있었는데 이들을 모두 지휘하기에는 계급이 너무 낮았다. 따라서 서부지구사령관 피어스 준장은 30일 밤에 제57보병연대(PS)의 작전참모인 해럴드 존슨 소령을 제45보병연대제2대대장으로 임명하면서 아냐산-실라임지역에 배치된 모든 병력의 지휘를 맡겼다.
당시 병력배치 상황을 보면 실라임강 북쪽에 제12보병연대제1대대(PA), 실라임강 남쪽에서 오솔길까지는 제45보병연대제2대대(PS), 오솔길 남쪽에서 아냐산강까지 제1경찰연대제1대대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아냐산강 남쪽은 비어 있었다. 제17추격비행대대는 예비대로서 보급로인 오솔길을 따라 주둔하고 있었고, 제57보병연대A중대(PS)는 오솔길과 서부도로가 만나는 지역을 지키고 있었다.
존슨 소령은 제57연대A중대를 서부도로에서 빼내어 아냐산강 남쪽에 배치했다.
31일 아침에 존슨 소령은 휘하 부대에게 현재 위치에서 일제히 서진하라고 명령했다. 하루동안 적이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정확한 적의 위치를 다시 확인함과 동시에 적이 없는 지역을 정리하려는 계획이었다. 북쪽의 제12보병연대제1대대는 오전 중에 실라임강 이북을 점령함으로써 전선의 1/3을 정리했다. 실라임강과 오솔길 사이를 맡은 스카우트 대대는 전날 적의 방어선을 공격했지만 이날은 적과 만나지 않고 오전 중에 해안에 도달했다. 대신 오솔길 남쪽에서 아냐산강 사이를 담당한 경찰대대가 90m 전진하다가 일본군의 방어선을 만나 전진을 멈추었다. 아냐산강 남쪽에서 아냐산곶으로 전진하던 제57보병연대A중대는 저항을 받지 않았다. 이로써 실라임강 하구에 있던 일본군이 남하하여 경찰대대 정면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했으나 규모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존슨 소령은 일본군의 규모를 과대평가하여 자신이 이끄는 병력만으로는 소탕이 불가능하며 제57보병연대(PS)가 투입되어야 한다고 보고했다. 피어스 준장은 건의를 받아들였다.
2월 1일 아침에 제57보병연대가 아냐산-실리암 지역으로 파견되었으며 연대장 에드먼드 릴리 중령이 존슨 소령으로부터 지역에 전개한 병력 전체의 지휘권을 인수했다. 존슨 소령은 제45보병연대제2대대장직도 원래 대대장이었던 로스 스미스 소령에게 돌려주고 자신의 원래 자리인 제57보병연대 작전참모 직위로 돌아갔다.
이제 200명의 일본군을 상대로 미-필리핀군이 압도적인 전력을 집중함으로써 아냐산-실라임 지역의 전투는 쉽게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추가 상륙 시도가 상황을 바꾸었다.
모리오카 중장은 퀴나완곶에서 전투 중인 츠네이로대대를 돕기 위하여 병력 파견과 별도로 보급품을 낙하산으로 떨어뜨렸다. 그러나 일본기들은 울창한 정글 속에서 일본군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고 결국 투하한 보급품의 절반 가량이 미-필리핀군의 손에 들어갔다. 어느날 제45보병연대는 12개의 낙하산 꾸러미를 주웠는데 거기에는 식량, 의약품, 탄약, 지도 등이 들어 있었다. 식량 꾸러미를 열자 쌀떡, 콩떡, 설탕, 그리고 매우 짠맛이 나는 분홍색 열매를 비롯하여 어떻게 먹거나 조리하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식료품들이 들어 있었다.
(우메보시. https://en.wikipedia.org/wiki/Umeboshi)
하지만 보급만으로 퀴나완곶의 일본군을 구할 수는 없었으며 증원병력 투입이 필요했다. 모리오카 중장은 보병대대 하나를 통째로 퀴나완곶에 투입하기로 했다. 1월 31일에 보병제20연대제1대대장 기무라 미츠오 소좌는 이미 아냐산-실라임 지역에 상륙한 고바야시중대를 제외한 대대 전체를 이끌고 퀴나완곶에 상륙하여 그곳에서 전투 중이던 츠네이로대대와 함께 마리벨스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기무라대대는 2월 1일 밤에 모론 북서쪽의 마가오곶에서 발동정을 타고 남쪽으로 떠났다.
당시 기무라대대의 편성은 다음과 같다.
보병제20연대제1대대(제1중대 감편)
보병제20연대제7중대의 1개 소대
사단무선, 보병단무선 각 1개 분대
제16사단위생대의 1/6
제16사단제1야전병원전투구호반
독립공병제1연대의 1개 중대(기무라대대상륙 후 올롱가포로 귀환)
미-필리핀군은 모리오카 중장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1월 28일에 필리핀 병사들이 전사한 일본군 장교에게서 1장의 서류를 노획했다. 이를 해독한 맥아더 사령부는 일본군이 바탄반도 서해안에 추가로 상륙할 계획임을 알아차리고 31일에 경고를 발했다. 맥아더 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전차단장 위버 준장은 2개 전차대대(1개 중대 감편)로 이루어진 전차연대를 서부지구사령관 피어스 준장에게 배속시켰으며 4대 밖에 남지 않은 P-40 전투기는 100파운드(45kg)짜리 폭탄을 달고 출격명령을 기다렸다.
2월 1일은 보름달이었다. 바짝 긴장하여 해안을 감시하던 미-필리핀군 병사들이 곧 10여척의 발동정으로 이루어진 일본주정군이 남하하는 것을 발견하고 보고했다. 제26기병연대가 상륙예정지로 알고 있던 카이보보곶으로 직행했으며 극동미육군항공대가 보유한 가용 전투기의 전부인 P-40 전투기 4대가 캅카벤 부근의 활주로에서 이륙했다. 전투기들은 일본주정군 상공에 도착하여 100파운드 폭탄을 떨어뜨리고 기총소사를 가했다.
주정군이 퀴나완곶에 접근하자 제88야포연대 D포대의 75mm 야포와 제301야포연대 E포대의 105mm 야포가 포격을 시작했다. 야포들은 1,000발을 발사하여 주정군에 큰 피해를 입혔다. 주정군이 더욱 접근하자 곶의 밑둥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미-필리핀군 병사들이 소화기 사격을 시작했다. 주정군을 호위하던 일본의 기뢰부설함 1척과 포정 1척이 퀴나완곶의 북안에서 소화기 사격을 가하는 미-필리핀군에게 포격을 가했으나 사격을 중단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PT32정은 아군에게 포격을 가하는 일본군 기뢰부설함에게 접근했다. 부설함이 탐조등으로 PT32정을 비추면서 포격을 가했으나 명중시키지 못했다. 탐조등을 목표로 기관총을 난사하며 접근한 PT32정은 어뢰 2발을 발사하고 돌아섰다. 어뢰는 빗나갔으나 해안포에 맞아 피해를 입은 데다가 추가로 어뢰의 위협을 받은 부설함은 북쪽으로 후퇴했다.
자정이 되자 절반 가량의 발동정과 1개 중대가 넘는 병력을 상실한 일본주정군이 상륙을 포기하고 북상했다. 미-필리핀군은 일본군이 모론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으나 기무라 소좌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기무라대대는 북상 도중 이미 고바야시중대가 상륙해 있던 아냐산-실라임 지역에 상륙했다. 이로써 아냐산-실라임 전투가 일찍 끝날 가능성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