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함락(14)-제143연대의 상륙
14. 제143연대의 상륙
싱고라 북쪽에서는 제15군 소속인 제55사단의 보병제143연대가 태국 남부에 상륙하고 있었다. 제143연대를 실은 수송선 7척은 제25군을 실은 선단과 함께 항해하다가 1941년 12월 7일 오전 10시 30분에 태국만 해상의 G 점에서 헤어져 목표지점인 나콘시탐마랏, 수랏타니(반돈), 춤폰, 그리고 프라추압키리칸으로 향했다.
(일본군의 태국 침공. https://en.wikipedia.org/wiki/Japanese_invasion_of_Thailand)
나콘으로 향한 선단은 수송선 2척, 공작선 1척으로 이루어져 해방함 시무슈의 호위를 받았다. 상륙병력은 보병제143연대 제1대대(제3중대와 기관총 1개 소대 제외)와 항공부대 일부 및 기타 부대로서 총 2,607명으로 자동차 50대를 보유했다. 상륙을 담당한 제1양륙대는 장갑정 1척, 대발 15척, 소발 11척, 얀마 6척, 소증기선 1척, 수선 1척, 대부주 4척을 보유했다.
얀마(ヤンマー)는 나무로 만들어 소형 엔진을 장착한 작은 주정을 통칭하는 말로 일본 회사인 얀마사가 만든 소형 디젤 엔진이 중일전쟁에서 크게 호평을 받으면서 보통명사화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만든 소형상륙정을 통틀어 히긴스 보트라고 부르던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나콘 선단이 시무슈의 유도를 따라 정박지에 닻을 내린 시간은 8일 오전 1시였다. 양륙대는 곧 주정을 내리고 병력이 옮겨탔는데 바다가 거칠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따라서 주정들이 해안으로 발진한 것은 오전 4시가 되어서였는데 바다가 거칠어서 많은 주정이 도중에 길을 잃었다. 양륙대장이 탄 지휘정이 흩어진 주정을 모아 오전 10시부터 상륙을 시작했는데 일본군 주정이 해안에 접근하자 태국군이 사격을 가했다. 장갑정이 앞에 나서서 태국군을 견제하는 동안 상륙을 감행하여 오전 10시 40분까지 상륙을 마쳤다. 일본군은 곧 태국군을 무장해제시키고 나콘 역과 비행장을 장악했다. 나콘 선단의 양륙이 끝난 것은 13일이었다.
프라추압으로 향한 1척에는 보병제143연대제3대대와 항공부대 일부 및 기타 부대가 탑승했다. 병력은 1,007명이었으며, 자동차 40대와 말 100필을 보유했다. 상륙을 담당한 제4양륙대는 대발 5척과 소발5척을 보유했다.
프라추압으로 향한 수송선은 8일 오전 4시 30분에 정박지에 진입했으며 주정에 올라탄 병력이 오전 6시 20분에 해안에 상륙했다. 태국군은 해안에서는 저항하지 않았으나 상륙 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일본군은 30분 간의 교전 끝에 태국군을 제압하고 무장해제를 실시한 후 비행장을 점령했다.
수랏타니와 춤폰으로 향한 선단은 3척으로 이루어져 경순양함 가시이의 호위를 받았다. 수랏타니로 향한 수송선 1척은 7일 저녁 9시에 춤폰으로 향한 수송선과 헤어져 서쪽으로 항진했다. 수랏타니 상륙부대는 보병제143연대제1대대제3중대와 1개 기관총소대, 그리고 항공부대 일부 및 기타부대로서 총 1,048명에 자동차 20대를 보유했다. 상륙을 담당한 제2양륙대는 대발 6척, 소발 6척, 얀마 2척을 보유했다.
수랏타니로 향한 수송선은 8일 오전 2시에 정박지에 닻을 내렸다. 양륙부대가 주정을 내리고 병력들이 올라탔다. 주정들은 오전 4시 10분에 발진하여 어둠 속에서 나침반에 의지하여 항해한 끝에 오전 10시에 상륙을 시작했다. 상륙 직후 태국군 일부가 사격을 가했으나 일본군은 곧 태국군을 무장해제시키고 비행장을 점령했다. 수랏타니의 양륙은 16일에 끝났다.
(일본경순양함 카시이.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s://en.wikipedia.org/wiki/Japanese_cruiser_Kashii)
춤폰으로 향한 수송선 2척에는 보병제143연대본부, 제3대대, 산포병제55연대제4중대,공병제55연대제3중대, 항공부대 일부 및 기타 부대가 탑승했다. 상륙부대의 병력은 2,233명이며 자동차 20대, 말 330필을 보유했다. 양륙을 맡은 제3양륙대는 대발 6척, 소발 10척, 얀마 12척, 소증기선 1척, 예인선 1척, 수선 1척, 대부주 6척을 보유했다.
보병제143연대의 주력을 실은 춤폰 선단은 8일 오전 3시에 정박지에 진입했다. 이어서 양륙대가 주정을 내리고 병력이 올라탄 다음 발진하여 상륙했다. 상륙은 힘들었다. 상륙 해안에 뻘밭이 넓게 펼쳐져 병사들은 주정에서 내린 다음 단단한 땅을 밟을 때까지 1시간 이상을 뻘에서 허우적거리며 전진해야 했다. 다행히 약 300명의 병력을 가진 태국군은 상륙 중인 일본군을 공격하지 않았다. 일본군이 춤폰 시내로 진입하자 교전이 벌어졌으나 곧 방콕으로부터 휴전 명령이 내려왔다. 일본군은 태국군을 무장해제하고 주변 비행장을 점령했다.
(빅토리아포인트)
춤폰에 상륙한 보병제143연대의 주력은 버마 남부로 진격하여 빅토리아포인트의 비행장을 점령하라는 임무를 받고 있었다. 제143연대 주력은 11일 아침에 자동차를 타고 춤폰을 떠났다. 일본군은 티티왕사 산맥을 넘고 팍찬을 거쳐 다음날인 12일 오후 2시에 크라부리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서 제143연대 주력은 둘로 갈라졌다. 제143연대제3대대(1개 중대 감편)는 산포 및 공병 1개 중대와 함께 강을 건너 버마로 들어가 마란을 거쳐 육로로 크라부리 강의 서안을 따라 남하했다.
제143연대본부는 1개 중대와 함께 접이식 보트에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갔다. 접이식 보트를 타고 크라부리 강을 따라 내려갈수록 물살이 거세져서 위험해졌다. 일본군은 14일 오전 6시 10분에 빅토리아포인트에서 북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말리완 부근에 상륙하여 자동차를 뺏어타고 남하했다. 연대본부와 1개 중대로 이루어진 일본군은 14일 오후 8시 20분에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고 빅토리아포인트를 점령했다. 제3대대 주력은 이틀 후에 도착했다. 이쪽 방면의 버마군은 일본군을 보자 도망쳤다.
빅토리아포인트를 점령한 일본군은 19일 오전 6시에 주정에 1개 소대를 실어 북쪽으로 145km 떨어진 복핀에 파견했다. 소대는 무사히 복핀에 상륙하여 주변 비행장을 점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