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게티지 정찰대

 

헨더슨 비행장  건설공사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해병대의 정찰대는 교두보 서쪽을 정찰하면서 비행장 지역에서 철수한 일본군 수비대의 정확한 위치를  찾고 있었다.

해병제1사단장 반데그리프트 소장은 해병대의 기습적인 상륙에 놀라 전열이 흩어진 상태의 일본군 수비대에게 빠른 시간 내에 치명타를 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을 주면 일본군은 증원군을 파견하여 기존의 일본군 수비대를 증강시키고 재정비할 것이었다. 

 

정찰 결과 비행장 지역에서 밀려난 일본군 대다수는 교두보에서 서쪽으로 6,400m 떨어진 마타니카우 강과 그곳에서 다시 6,900m 서쪽으로 떨어진 코컴보나 마을 사이에 몰려 있었다.

 

8월 9일에 마타니카우 강을 건너려던 해병대의 소규모 정찰대가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서 몇명이 부상을 입었다.

마타니카우 강의 서안에는 일본군의 방어선이 형성되어 있어서 강을 건너기가 어려웠다.

 

8월 11일에 제1/5대대의 정찰대가 일본군 준위 한사람을 생포했다.

그는 해병대에게 자신이 소속되었던 부대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면서 자신의 부대는 식량도 없이 정글 속을 헤매고 다녔다면서 그들이 항복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날 오후에 해병대의 정찰대가 마타니카우 강 서안에서 백기를 보았다는 잘못된 정보가 들어왔다.

이 말을 들은 사단 정보참모 프랭크 게티지 중령은 자신이 직접 정찰대를 이끌고 가서 일본군을 항복시키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사단정보부의 스티븐 커스터 상사는 2개 분대를 거느리고 마타니카우 강 서쪽을 정찰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정찰대는 8월 12일 아침 6시에 상륙주정을 타고 교두보를 출발, 오전 10시경에 마타니카우 강 서쪽의 크루즈 곶에 상륙할 예정이었다.

이후에는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마타니카우 강까지 전진하고 마타니카우 강에 도달하면 강의 서안을 따라 내륙 쪽으로 해가 질때까지 전진하다가 야영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여 강을 건너서 육로로 교두보에 복귀한다는 생각이었다. 

이 정찰대의 주요 임무는 마타니카우 강 서안지역의 정찰이었지만 전원 전투병력으로 구성하여 전투에도 대비했다.

 

그런데 게티지 중령은  커스터 상사의 정찰계획을 바꾸어서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찰대를 꾸렸다.

그리하여 25명의 병력 중에 전투병력은 1개 분대로 줄어들고 나머지 1개 분대는 일본어 통역인 랠프 코리 소위를 비롯한 사단정보부의 비전투병력으로 채워졌다.

항복한 일본군을 현장에서 돌보아 주기 위하여 제5해병연대의 군의관인 말콤 프랫 해군소령까지 동행했다.

게다가 출발도 12시간이나 늦어져서 정찰대를 실은 상륙주정은 오후 6시에야 출발하여 밤 10시에 크루즈 곶과 마타니카우 강 사이에 상륙할 예정이었다.

 

3일 전에 마타니카우 강 서쪽 지역을 정찰했던 제5해병연대의 한 장교는 크루즈 곶과 마타니카우 강 사이에는 일본군이 강력한 방어선을 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게티지 중령의 계획을 알고 깜짝 놀란 이 장교는 8월 12일 낮에 게티지 중령을 찾아와서 야간에 그 지역에 상륙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경고했으나 게티지 중령은 무시했다.

 

8월 12일 밤 10시에 크루즈 곶과 마타니카우 강 사이의 해안에 상륙한 게티지 중령의 정찰대는 상륙 직후 일본군의 매복공격을 받았다.

야간에 정확한 지형지물도 모르는 상황에서 적의 맹공을 받은 게티지 정찰대는 자정 무렵 3명을 제외하고 전멸했다.

생존자 중 찰스 앤트 병장이 13일 새벽 5시 30분에 교두보에 도착하여 게티지 정찰대가 일본군의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즉시 제5해병연대의 A 중대가 기관총 2정을 보유한 1개 섹션과 함께 구조를 위하여 출동했다.

이어서 제5연대 L 중대의 2개 소대도 기관총 1개 섹션을 대동하고 출발했다.

이들은 크루즈 곶 서쪽에 상륙하여 A 중대는 해안을 따라 L 중대의 2개 소대는 내륙쪽으로 들어가서 마타니카우 강을 향하여 동진하면서 수색을 벌였으나 게티지 정찰대의 흔적을 찾는데 실패했다.

일본군은 강력한 전력을 갖춘 A 중대 및 L 중대와의 충돌을 회피하여 가벼운 총격전만 있었을 뿐 수색과정에서 큰 전투는 없었다.

A 중대와 L 중대는 14일 낮에 교두보로 돌아왔다.

 

반데그리프트 소장의 예측대로 일본군은 라바울에서 증원군을 파견했다.

다카하시 대위가 이끄는 요코스카 제5해군육전대 소속 113명이 8월 15일 라바울을 출발하여 16일 밤에 과달카날의 서쪽 타사파롱가 해안에 상륙했다.

제5해군육전대는 곧 동쪽으로 이동하여 17일 밤에 마타니카우 마을에 도착, 설영대와 합류했다.

 

반데그리프트 소장은 8월 17일에 헨더슨비행장에서 쫓겨난 일본군 수비대의 주력이 마타니카우 마을에 주둔 중인 사실이 확인되자 본격적인 공격에 나섰다.

1942년 8월 18일에 제5연대의 L 중대가 교두보를 출발하여 마타니카우 강 상류에서 도하하여 남쪽으로부터 마타니카우 마을에 접근했다. 

다음날인 8월 19일 아침부터 제5연대의 B 중대가 제11연대의 75mm 및 105mm 곡사포의 화력지원 하에 마타니카우 강을 건너 일본군의 방어선 정면을 압박했다.

 

(1942년 8월 19일의 마타니카우 마을 및 코컴보나 마을 공격 상황도. 원본은 여기로)

 

19일 오후 2시경에 L 중대가 마타니카우 마을의 남쪽 방어선에 도달하자 마타니카우 마을의 일본군들은 남쪽과 동쪽에서 동시에 공격을 받게 되었다.

새로 도착한 요코스카 제5해군육전대가 주축이 된 일본군들이 해병대의 맹공에 맞서 강력하게 저항함으로써 마타니카우 마을의 남쪽과 동쪽에서는 오후 내내 치열한 공방전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75mm 와 105mm 곡사포의 화력지원을 등에 업은 B 중대와 L 중대는 오후 6시에 결국 일본군의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마타니카우 마을을 점령했다.

살아남은 일본군들은 정글로 도망갔다.

 

한편 I 중대는 상륙주정을 타고 마타니카우 마을에서 서쪽으로 6km 정도 떨어진 코컴보나 마을의 서쪽에 상륙하여 코컴보나 마을을 점령하고, 마타니카우 마을에서 쫓겨난 일본군들이 해안선을 따라 도망가지 못하도록 해안도로를 봉쇄하는 역할을 맡았다.

I 중대의 공격은 하마터면 재앙으로 끝날 뻔했다.

 

I 중대를 실은 상륙주정들이 코컴보나 마을 서쪽의 상륙해안에 거의 도착했을 때 갑자기 일본군의 순양함 1척과 구축함 2척이 나타나서 포격을 퍼부었다.

다행히 1척도 포탄을 맞지는 않았으나 대경실색한 주정 승무원들이 가장 가까운 해안에 무조건 주정을 접안시켰는데 하필이면 바로 일본군의 방어선 코앞이었다.

주정이 해안에 접근하자 일본군의 기관총탄이 쏟아졌다.

배후에 일본군의 순양함과 구축함이 버티고 있어서 I 중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비장한 각오로 전원 착검한 I 중대의 해병대원들은 주정의 문이 열리자마자 섬이 떠나갈듯한 함성을 지르면서 뛰쳐나와 일본군 방어선을 향하여 전속력으로 돌격했다.

일본군이 즐겨쓰던 반자이 돌격의 해병대판이었다.

 

I 중대는 운이 좋았다.

코컴보나를 지키던 소수의 일본군은 자기편 해군에게 쫓겨온 줄도 모르고 자기들 바로 코앞에 보란듯이 주정을 들이미는 미군의 뻔뻔함에 이미 반쯤 기가 죽어 있던 상태였다.

거기다가 기관총 사격에도 불구하고 미친듯이 괴성을 지르면서 전속력으로 돌격해 오는 살기등등한 해병대원들을 보고는 그만 전의를 상실해 버렸다.

1개 소대가 채 안되는 소수의 일본군 수비대는 저항을 포기하고 일제히 등을 돌려 정글로 도망갔다.

그리하여 I 중대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고 코컴보나 마을을 점령했다.

 

교두보 해안을 지키던 제5연대 M 중대 제1소대장 드류 바렛 소위는 교두보에 접근한 일본군 순양함을 발견하자 일본군에게서 노획한 2문의 80mm 양용포를 사용하여 포격을 가했다.

제1소대는 20발의 포탄을 발사했으나 명중탄을 내지는 못했다.

일본순양함도 함포로 반격했으나 역시 명중탄을 기록하지 못했다.

 

(1942년 8월 19일 오전에 일본순양함과 포격전을 벌인 제5해병연대 M 중대 제1소대 소속 일본제 80mm 양용포 중 1문)

 

오전 내내 교두보 부근에서 어슬렁거리며 해병대의 신경을 건드리던 일본순양함과 구축함들은 정오 경에 B-17 폭격기 2대가 나타나서 폭격을 가하자 허둥지둥 사라졌다.

 

반데그리프트 소장은 현재 해병대의 병력상황으로는 마타니카우 마을과 코컴보나 마을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교두보 서쪽의 일본군을 공격하여 타격을 입힌다는 당초의 목적은 달성했으므로 반데그리프트 소장은 코컴보나와 마타니카우 마을을 점령한 해병대에게 철수를 명령했다.

마타니카우 및 코컴보나 공격작전에서 해병대는 전사 4명, 부상 11명의 인명피해를 입었다.

해병대가 확인한 일본군 전사자는 65명이었다.

 

제5해병연대가 교두보 서쪽의 일본군을 공격하는 동안 교두보의 동쪽에서는 일본육군 제28연대장 이치기 기요나오 대좌가 지휘하는 이치기 지대가 제1해병연대의 일루 강 방어선을 향하여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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