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기동부대는 진주만을 떠나 사모아로 가는 도중에 나쁜 뉴스와 크고작은 사고에 시달렸다.
진주만을 떠난 첫날인 1942년 1월 11일 저녁에 새러토가가 일본잠수함에게 뇌격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온 데 이어 13일에는 구축함 블루의 승조원 한명이 파도에 휩쓸려 실종되었다.
같은 날 엔터프라이즈의 조종사 한명이 무선침묵을 깨뜨리는 바람에 작전 전체가 위험에 빠질 뻔했다.
16일에는 순양함 솔트레이크시티의 승조원 한명이 사고로 사망했으며 돈틀레스 한대가 착륙 중에 추락하여 또 1명이 사망했다.
게다가 제6뇌격대 소속의 데버스테이터 뇌격기 한대가 실종되었다.
이 뇌격기의 승무원들은 무려 34일을 해상에서 표류하면서 불시착한 해상에서 1,200km 나 떨어진 푸카푸카섬 해안에 도착하여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런저런 사고에도 불구하고 제8기동부대는 예정대로 1월 20일에 사모아에 도착했다.
제8기동부대는 사모아 북방 160km 지점에 자리잡고 북서쪽으로는 일본군의 접근을 감시하고 남쪽으로는 급유문제로 도착이 늦어지고 있는 해병대 수송선단과 요크타운 중심의 제17기동부대를 기다렸다.
1월 23일, 해병대를 실은 수송선단이 제17 기동부대와 함께 사모아에 도착하여, 다음날인 24일에 5,000 명의 해병대가 안전하게 상륙을 마쳤다.
1월 25일, 제8기동부대와 제17기동부대는 북서쪽으로 2,600km 떨어진 마셜 제도를 향하여 사모아를 출발했다.
제8기동부대와 제17기동부대를 통합지휘하던 헐지 제독은 참모장 마일스 브라우닝 대령의 의견을 받아들여 각 기동부대가 따로 목표를 공격하기로 했다.
(브라우닝 대령)
그래서 플레처 소장이 지휘하는 요크타운 중심의 제17기동부대는 길버트 제도의 마킨 환초와 남부 마셜 제도의 잴루잇 및 밀리 환초를 공격하고 헐지 중장 자신은 제8기동부대를 이끌고 방어가 더 강할 것으로 생각되는 북부 마셜 제도의 웟제 환초와 말로에라프 환초의 타로아섬을 공격하기로 했다.
여기서 잠깐 용어정리..
중부 태평양에는 환초(atoll)가 많다.
환초란 주로 해저화산 위에 산호가 퇴적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원형, 삼각형, 또는 말발굽형 등의 형태로 수면 바로 밑에 형성된 산호의 방벽(=산호초, reef)에 의하여 외해와 차단되고 1-2개의 수로를 통해서만 외해와 연결된 초호(lagoon)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산호초의 일부가 수면 밖으로 돌출되어 흙이 쌓이고 이곳에 야자나무같은 약간의 식물이 자라고 있는 해발 수미터 정도의 나지막한 땅뙈기(island=섬)가 있다.
이러한 산호초와 섬과 초호를 모두 합친 것을 환초(atoll)이라고 부른다.
(환초=atoll, 초호=lagoon, 산호초=reef)
이러한 환초의 크기는 천차만별로서 작은 것은 초호의 면적이 작은 운동장만한 것에서 세계 최대의 환초인 콰절린 환초같은 경우는 초호의 직경이 100km x 35km, 초호의 면적은 2,700 제곱킬로미터에 댤한다.
그런데 이 섬들은 환초 이름과 다른 각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혼동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태평양전쟁에서 접할 수 있는 전장의 이름은 보통 환초의 이름이다.
예를 들어 피투성이 상륙전의 대명사격인 타라와 상륙작전의 경우 타라와는 환초의 이름이며, 실제로 미해병대가 죽어간 섬은 베티오 섬이다.
그리고 이제 헐지 제독이 공격하려는 북부 마셜 제도의 타로아 섬은 말로에라프 환초에 있는 섬의 이름이다.
물론 환초 이름과 섬의 이름이 일치하는 경우도 있는데, 마셜 제도의 콰절린 환초에서 가장 큰 섬이 콰절린 섬이다.
환초는 해군에게 이상적인 기지가 된다.
초호가 충분히 넓을 경우 외해의 거친 파도에서 보호되는 이상적인 정박지나 수상기 기지가 되며 섬들은 평탄한 지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건물을 짓거나 활주로를 건설하기에 적당하고 산호를 잘게 부수면 활주로의 재료로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는 환초를 점령하려면 섬의 바깥쪽으로 멀리 수면 바로 밑에 밀생하고 있는 산호 때문에 상륙주정의 접근이 어려워서 까다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며 산호를 타고넘어 전진할 수 있는 상륙장갑차(앰트랙)를 대량으로 보유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섬들을 점령하기 어렵다.
제8기동부대의 최초 계획으로는 웟제 환초와 타로아 섬의 방어가 튼튼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공격목표를 추가할 여력이 없었으나 1월 27일에 태평양함대사령부로부터 추가정보가 들어왔다.
즉 미잠수함 SS-169 돌핀의 정찰 결과 웟제 환초와 타로아 섬의 방어는 튼튼한 편이 아니며 웟제 환초로부터 서쪽으로 240km 떨어진 콰절린 환초에서 적의 항공기 및 함정의 활발한 활동이 관측되었다는 것이다.
명민하고 공격적인 브라우닝 대령은 콰잘리 환초도 공격목표에 포함시키자고 주장하여 허지 제독의 승인을 받았다.
콰절린 환초를 공격범위 내에 넣으려면 제8기동부대는 웟제 환초와 타로아 섬에 위험스러울만큼 다가가야 했으나 어차피 적 항공기의 행동반경 내에서 행동하는 이상 안전을 위해서는 적이 알아채기 전에 일격을 가하여 반격능력을 꺾어버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제8기동부대가 진주만을 떠나기 5일 전인 1월 6일에 진주만을 공격했던 나구모 제독의 항공모함 부대가 일본내해를 떠났다.
진주만 공격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에 제2차 웨이크 섬 공격을 지원하기 위하여 파견했던 제2항공함대 소속의 항모 소류와 히류가 아직 합류하지 않아서 기동부대는 아카기, 카가, 쇼가쿠, 즈이가쿠 4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충분히 강력했던 이 부대가 일본내해를 떠나자 어디로 갈 것인지 미해군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만일 이들이 마셜 제도나 길버트 제도로 온다면 일본군의 지상발진항공기들과 함께 이곳을 공격하려는 제8기동부대나 제17기동부대에게 반격을 가하여 격멸해버릴 수 있었다.
우려와는 달리 이 항공모함들은 트럭제도에 들렀다가 남쪽으로 내려가 1월 23일에 있었던 일본군의 라바울 점령시 항공지원을 제공한 후 팔라우 제도 방면으로 가 버렸다.
제8기동부대와 제17기동부대가 나란히 북상하던 1월 28일 오후 4시, 엔터프라이즈는 함대 급유선 플랫의 옆에서 나란히 항진하면서 급유를 받기 시작하여 5시간 30분 후인 9시 30분에 급유를 마쳤다.
주력함이 야간에 이동하면서 측면 급유를 받은 일은 이때가 최초였다.
대낮에도 주력함이 급유선과 나란히 진행하면서 측면 급유를 받는 것이 위험하게 생각되던 시절에 이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이후로도 태평양함대사령관인 니미츠 제독이 관심을 가지고 독려한 덕분에 미해군의 해상급유 및 보급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여 1943년 이후로는 낮이건 밤이건 상관없이 함정들이 급유선이나 보급선의 양옆을 나란히 달리면서 2척이 동시에 급유를 받거나 보급을 받는 일이 일상사가 되었다.
이러한 효율적인 해상보급기술은 연료와 보급품을 퍼먹는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대규모의 항모기동부대가 원거리를 다니면서 자유롭게 행동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영국해군은 태평양전쟁의 막바지까지도 함정이 보급선의 뒤를 따라가며 한번에 한척씩 보급받는 방법 밖에 익히지 못한 상태였다.
1월 29일, 요크타운 중심의 제17기동부대가 길버트제도 공격을 위하여 떨어져 나갔고, 다음날 제8기동부대는 날짜변경선을 통과하여 1월 31일이 되었다.
출격시간이 24시간 내로 다가오자 제8기동부대는 막바지 공격준비에 들어갔다.
제6전투비행대대는 와일드캣의 조종석 뒷면에 보일러용 철판을 덧대어 방어력을 보강했다.
헐지 중장은 기동부대 내의 모든 함정에게 여차하면 다른 함정을 예인하거나 또는 예인당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어 두도록 명령했다.
공격을 마치고 후퇴시 예인할 필요가 생겼을 때 예인 준비를 갖추느라 1분도 허비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항법사들과 항공기 승무원들은 낡은 작전해역 지도를 뚫어지도록 들여다보면서 작전과 지형에 대하여 연구하고 암기했다.
저녁 6시 30분, 제8기동부대는 발진지점을 향하여 시속 30노트의 고속으로 항진하기 시작했다.
다음날인 2월 1일 새벽 2시 20분, 당직을 서고 있던 장교 한 사람이 얼굴에 모래가 부딪힌다며 보고했다.
핼시 제독은 즉시 함대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도록 명령했다.
그 지역의 해도가 오래된 것이라 정확도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에 까딱하다간 좌초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처음에 그 보고를 했던 장교는 자기 얼굴에 붙은 모래가 입 안에서 금방 녹아버리고, 또 맛이 달다는 것을 깨닫고 살펴보자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서 한 수병이 커피에 설탕을 넣다가 바람에 흩날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났다.
40분 후인 2월 1일 오전 3시, 엔터프라이즈의 전 승무원들에게 기상명령이 내려졌다.
핼시 중장의 계획에 따르면 아침 7시 직전에 북부 마셜 제도의 3개 목표에 대하여 동시에 공격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오전 4시 30분, 엔터프라이즈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오전 4시 43분, 제6전투비행대 소속의 와일드캣 6대가 전투공중초계(Combat Air Patrol, CAP)임무를 위하여 아직 어두운 밤하늘로 날아 올랐다.
곧 이어서 제6정찰비행대와 제6폭격비행대 소속 36대의 돈틀레스가 엔터프라이즈 항공단장인 영 중령의 인솔 하에 엔터프라이즈의 비행갑판을 떠났다.
오전 5시에는 제6뇌격대 소속인 9대의 데버스테이터와 엔진 고장으로 출발이 늦어진 1대의 돈틀레스가 출격했다.
이 46대의 돈틀레스 및 데버스테이터는 250km 떨어진 콰잘레인 환초로 향했다.
아침 6시 10분에는 제6전투비행대 소속 12대의 와일드캣이 워제 환초와 말로에라프 환초의 타로아 섬을 목표로 엔터프라이즈의 갑판을 떠났다.
이들 중 David W. Criswel 소위의 탑승기가 이륙 직후 실속을 일으켜 바다에 추락했고, 크리스웰 소위는 실종되었다.
야간작전에 대한 훈련부족으로 인하여 빚어진 사고였으나 다행히 더 이상의 불상사는 없었다.
이때 출격한 데버스테이터는 어뢰 대신 접촉신관을 장비한 225kg 짜리 폭탄을 3발 달고 있었고, 돈틀레스는 225kg 짜리 폭탄 1발과 90kg 짜리 폭탄 2발을, 와일드캣은 45kg 짜리 폭탄 2발씩을 장비하고 있었다.
제8기동함대의 함재기들이 엔터프라이즈의 비행갑판을 속속 떠나고 있던 그 시각, 스프루언스 제독의 순양함들도 그들의 표적을 향하여 항진하고 있었다.
와일드캣의 공습이 끝나자마자 이들 중 노댐턴과 솔트레이크시티는 워제 환초를, 체스터와 2척의 구축함은 타로아 섬을 각각 포격할 예정이었다.
사실상 워제 환초와 타로아 섬의 경우 와일드캣의 역할은 주로 적의 비행장을 공격하여 일본군의 반격능력을 제거하는 것이었으며, 이어서 순양함들이 함포사격을 가하여 목표물에 실질적인 타격을 입힐 계획이었다.
당시 마셜 제도를 지키던 일본군 항공기들은 제24항공함대의 일부 세력이었다.
몇 개의 섬에 흩어져있던 이 세력은 합하여 33대의 구형 A5M Claude 전투기,9대의 폭격기, 그리고 9대의 비행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수의 폭격기를 포함한 제24항공함대의 나머지 세력들은 트럭 제도와 라바울에 배치되어 있었다.
(미츠비시 A5M4 Claude, 96식함상전투기. 승무원 : 1명, 길이 : 7.6m, 폭 : 11m, 최고속력 : 440km/hr, 항속거리 : 1,200km, 무장 : 기수에 7.7mm 기관총 2정)
오전 7시 직전, 콰잘레인 공격대 중 Eugene Lindsey 소령이 이끄는 뇌격기대가 콰잘레인 환초 북단의 Roi 섬에서 남쪽으로 70km 떨어져 있던 일본군의 콰잘레인 정박지를 공격하기 위하여 본대를 떠났다.
영 중령이 인솔하는 돈틀레스 37대로 이루어진 본대는 여명 직전의 어둠 속에서, 얕게 깔린 안개를 뚫고서 수십년된 낡은 지도에 의존하면서 로이 섬을 찾아서 계속 전진했다.
이들은 오전 7시 5분, 원래 공격예정시간에서 7분 늦게 제6정찰비행대장인 Halstead L. Hopping 소령이 이끄는 6대의 돈틀레스를 필두로 로이섬 상공에 도착하여 급강하폭격을 시작했다.
엔터프라이즈의 공격대가 도착하기 직전에 경고를 받았던 로이 섬의 대공포화가 치열하게 불을 뿜었고 지상의 활주로에서는 전투기들이 -고정식 랜딩기어를 가진 구식의 클라우드 기- 급히 출격하고 있었다.
공격대의 가장 선두에서 치열한 대공포화에 노출된 하핑 소령의 탑승기는 폭탄을 투하한 직후 피격되어 바다에 추락, 하핑 소령과 후방사수인 Thomas Harold 병장이 전사했다.
제6정찰비행대는 편대장들인 Earl Gallaher 대위와 C. E. Dickinson 대위의 지휘 하에 공격을 계속했다.
그들은 로이 섬의 일본군 비행장을 두들겨서 탄약저장고와 2개의 격납고, 통신실을 파괴했고, 기지 시설물들과 지상에 주기된 적의 항공기들에 대하여 기총소사를 가했다.
일본군의 전투기들과 대공포화에 의하여 3대의 돈틀레스가 더 격추되었지만 돈틀레스들도 반격을 가하여 클라우드 전투기 3대를 격추했다.
본대와 헤어져 콰잘레인 정박지에 쇄도한 제6뇌격비행대의 데버스테이터 9대는 기습에 성공하여 대공포화의 저항을 크게 받지 않으면서 폭격을 시작하여 몇 척의 함선에 피해를 입혔다.
이곳에서 일본군의 상선들과 잠수함들, 그리고 순양함 가토리를 발견한 린지 소령은 즉시 본대의 영 중령에게 연락해서 더 많은 급강하폭격기들을 보내도록 요청했다.
영 중령은 즉시 제6폭격비행대장인 William R. Hollingworth 소령에게 명령을 내려 제6폭격비행대 소속의 돈틀레스 뿐만 아니라 아직 폭탄을 가지고 있는 제6정찰비행대 소속의 돈틀레스 7대도 같이 이끌고 로이섬 상공을 떠나 콰잘레인 정박지로 가도록 명령했다.
한편 엔터프라이즈에서는 영 중령이 무전으로 홀링워스 소령에게 내리는 명령을 듣고 남아있던 제6뇌격비행대 소속 9대의 데버스테이터들이 어뢰로 무장하고 출격준비를 갖추었다.
콰잘레인 정박지에 도착한 제6폭격비행대와 제6정찰비행대 소속의 돈틀레스들은 4,200m 상공에서부터 차례로 급강하폭격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공격이 끝났을 때 수송선 보르도마루와 구잠함 쇼난마루가 격침되었고, 정박지의 방어사령관을 포함하여 90여 명의 일본군이 전사했다.
콰잘레인 공격대가 로이 섬과 콰잘레인 정박지를 공격하는 동안 제6전투비행대 소속의 와일드캣들도 타로아 섬과 워제 환초를 공격하고 있었는데 워제 환초는 엔터프라이즈에서 직접 보일만큼 가까이 접근해 있었다.
오전 7시 직전에 제6전투비행대장인 C. Wade McClusky 대위가(이 사람은 4월에 소령으로 진급하여 엔터프라이즈 비행단장이 된 후 6월 4일에 벌어진 미드웨이 해전에서 휘하의 돈틀레스들을 이끌고 일본항모 아까기와 카가를 폭격하여 침몰시킴으로써 미해군에서 가장 유명한 소령이 된다.) 이끄는 6대의 와일드캣이 워제 환초를 기습하여 아직도 단잠에 빠져있던 일본군 기지를 공격하여 건설 중이던 비행장을 폭격하고 지상 시설에 기총소사를 가했다.
James S. Gray 대위가 이끄는 5대의 와일드캣은 타로아 섬으로 향했다.
오전 7시 직전에 그레이 대위는 눈앞에 섬을 하나 발견하자 그의 요기인 Wilmer Rawie 중위와 함께 폭탄을 떨어뜨렸다.
그런데 그 섬은 타로아가 아니라 Tjan이라는 무인도였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그레이 대위가 남동쪽을 살펴보다가 24k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타로아 섬을 발견했다.
타로아 섬의 상공에 도달한 그레이 대위의 공격대는 이 기지가 방어가 허술한 수상기 기지라는 정보예측과 달리 1.6km 짜리 활주로를 두 개나 갖추고 수많은 적기들이 작전하고 있는 크고 강력한 비행기지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엔터프라이즈에서 동남향으로 불과 160km 떨어져 있는 타로아 섬은 엔터프라이즈의 가장 큰 위협이었다.
2,400m 상공에서 공격에 들어간 5대의 와일드캣은 활주로에 45kg 짜리 폭탄을 떨어뜨리고, 활주로 옆에 길게 주기되어 있던 적 항공기들의 대열에 기총소사를 가했다.
이럴 때 효과적인 소이탄이 장비되지 않았던 관계로 불에 휩싸이며 완전 파괴를 확인한 것은 한 대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외에도 여러 대의 항공기에 손상을 입혀서 적어도 당분간은 작전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 일로 덕분에 엔터프라이즈에 대한 일본군의 반격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었다.
타로아 섬에 대한 1차 공격을 마치고 고도를 회복한 라위 중위는 전방 1.6km 지점을 비행하고 있는 적의 클라우드 전투기 두 대를 발견했다.
들키지 않고 밑에서부터 접근하는데 성공한 라위 중위는 12.7mm 기관총탄을 퍼부어서 선두기를 격추하고, 곧바로 2번기에게 돌진하였는데 두 전투기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적의 날개가 거의 자신의 비행기와 접촉할 정도까지 접근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라위 중위도 깜짝 놀랐으나 상대방도 혼비백산하여 전속력으로 도망쳐 버렸다.
타로아 기지에서는 거듭되는 와일드캣의 기총소사에도 불구하고 8대의 전투기를 발진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들 중의 3대가 그레이 대위의 와일드캣을 노리고 접근하기 시작할 무렵, 지난 몇 달간 기계적 신뢰성이 부족한 것이 알려져 있던 와일드캣의 기관총들이 고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레이 대위의 기관총 중 3개가 고장을 일으켰고 라위 중위의 기관총 4개도 모두 고장을 일으켰다.
그 외에 Ralph Rich 소위의 탑승기를 비롯한 나머지 와일드캣들도 모두 기관총의 고장을 일으켜서 그들은 할수없이 편대장 그레이 대위를 뒤에 남겨두고 모함을 향하여 타로아 섬 상공을 떠났다.
이제 적기지 상공에 홀로 남아 적기에 둘러싸인 그레이 대위는 살아남기 위하여 아직 작동하는 하나의 기관총을 마구 난사하며 적기 중의 하나에게 고속으로 돌진해 갔다.
깜짝 놀란 그 적기가 피하면서 공간이 생기자 그레이 대위는 전속력으로 도주했다.
천신만고 끝에 모함에 돌아온 그레이 대위의 탑승기 동체에는 30 군데 이상 구멍이 뚫려있었고, 조종석 뒤에 덧대었던 보일러용 철판에도 수많은 탄흔이 남아 있었다.
제6전투비행대가 워제 환초와 타로아 섬에서 물러나자 스프루언스 제독의 순양함부대가 포격을 시작했다.
노댐턴과 솔트레이크시티는 오전 7시 15분부터 워제 환초를 포격하기 시작했다.
(펜사콜라급 중순양함 솔트레이크시티 CA-25. 표준배수량 : 11,000톤, 길이 : 178.5m, 폭 : 19.9m, 속력 : 32.7노트, 승무원 : 612명, 무장 : 8인치 주포 10문, 5인치 4문, 47mm 대공포 2문, 어뢰발사관 6기, 항공기 : 4대)
중순양함 체스터와 구축함 2척은 와일드캣이 떠나가자 타로아 섬의 일본군 비행기지와 항공기를 겨냥하여 포격을 시작했다.
곧 타로아 섬의 일본기들이 반격을 가하여 체스터가 고물 쪽에 소형폭탄을 한발 맞았다.
오전 8시 30분에 8대의 일본군 쌍발폭격기가 800kg짜리 대형폭탄을 사용하여 체스터에게 수평폭격을 시도했다.
이 폭탄들은 한발도 명중하지는 않았으나, 800kg짜리 대형폭탄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간담이 서늘해진 체스터와 두 척의 구축함은 포격을 중단하고 철수했다.
(노댐턴 급 중순양함 체스터 CA-27. 표준배수량 : 9,300톤, 길이 : 182.9m, 폭 : 20.1m, 최고속력 : 32노트, 승무원 : 621명, 무장 : 8인치 주포 9문, 5인치 포 4문, 어뢰발사관 6기, 항공기 : 2대)
엔터프라이즈 함상에서는 오전 8시경부터 라위 중위를 필두로 조종사들이 귀환하기 시작하자 타로아 재공격에 내보낼 조종사들을 급히 선발하기 시작했다.
어뢰를 장비한 제6뇌격비행대 소속의 데버스테이터 9대는 Lance Massey 소령의 지휘 하에 이미 콰잘레인을 향하여 날아가고 있었다.
제6전투비행대 소속의 와일드캣들은 대부분 전투공중초계 임무로 돌려야했기 때문에 타로아 섬에 대한 재공격은 주로 제6폭격비행대와 제6정찰비행대가 담당하게 되었다.
오전 9시 30분에 제6폭격비행대장 홀링워스 소령이 이끄는 9대의 돈틀레스기(7대는 제6폭격비행대 소속,2대는 제6정찰비행대 소속)가 타로아 재공격을 위하여 엔터프라이즈를 떠났다.
이들이 타로아 상공에 도달하자 일본기들이 재급유와 재무장을 위하여 대부분 지상에 있었다.
돈틀레스들은 태양을 등지고 공격을 시작하여 격납고 2동과 지상에 있던 항공기들을 파괴했다.
5대의 클라우드 기가 급히 날아올라서 반격을 가했으나, 돈틀레스들은 한대도 빠짐없이 안전하게 엔터프라이즈로 귀환했다.
오전 10시 30분에 제6폭격비행대의 Richard Best 대위가 이끄는 제3차 공격대가 엔터프라이즈 함상을 떠났다.
제3차 공격대는 타로아의 통신탑, 연료저장고, 그리고 비행장 시설물들을 파괴하여 기지의 기능을 거의 마비시켰다.
이들은 일본기들의 반격을 받아 John Doherty 소위의 탑승기가 격추되었다.
그러나, 도허티 소위와 후방사수인 Will Hunt 일병은 달려드는 일본기들에게 반격을 가하여, 격추되기 전에 이미 2대의 클라우드 기를 격추한 상태였다.
제3차 공격대가 귀환하자 제8기동부대는 일본기의 반격에 대비하면서 북쪽을 향하여 30노트의 고속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오후 1시 30분, 엔터프라이즈의 레이더에 적기들이 포착되었다.
일본군의 쌍발폭격기인 96식 Nell 폭격기 5대가 공격해왔다.
제6전투비행대 소속의 와일드캣 4대가 엔터프라이즈 전방 25km 지점에서 이들을 덮쳤으나, 마침 일부 와일드캣의 기총이 고장난데다가 일본기들이 구름 속에 숨어버리는 바람에 이들을 놓치고 말았다.
일본기들은 고도 3,000m에서 구름 밖으로 나왔고, 엔터프라이즈의 우전방 쪽에서 시속 350km의 속도로 접근했다.
곧 제8기동부대 내의 모든 5인치 양용포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으나, 포수들의 훈련이 부족하여 대부분의 포탄들이 일본기의 뒤에서 폭발했다.
그리하여 대공포화가 일본기들보다는 오히려 이들을 추격하는 아군의 와일드캣을 위협하는 상황이었다.
(미츠비시 G3M Nell, 96식육상공격기. 승무원 : 7명, 길이 : 16.5m, 폭 : 25m, 최고속력 : 375km/hr, 항속거리 : 4,400km, 무장 : 20mm 기관포 1문, 7.7mm 기광총 4정, 폭탄 800kg 또는 어뢰 1발)
엔터프라이즈의 함장 머레이 대령은 엔터프라이즈를 지그재그로 항진하게 함으로써 일본기의 조준을 방해했다.
엔터프라이즈의 1.1 인치 포들이 작렬하는 가운데 일본기들은 각각 3개씩의 60kg 짜리 폭탄을 투하했다.
이 폭탄들은 대부분 빗나갔지만 1발의 폭탄이 항공유 송유관 부근에서 폭발하여 작은 화재를 일으키고 George Smith 상병에게 중상을 입혔다.
폭격을 마친 일본기들은 귀환코스를 잡았는데 편대장인 나가이 가즈오 대위의 폭격기가 갑자기 왼쪽으로 선회하더니 엔터프라이즈를 향하여 돌진해 왔다.
함대 내의 모든 대공포화가 맹렬하게 불을 뿜었으나 이 폭격기를 저지하지 못했다.
충돌 직전의 마지막 순간에 엔터프라이즈는 최대한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아마도 기계적 고장을 일으킨듯한 이 폭격기는 엔터프라이즈를 따라잡지 못하고 이물쪽 비행갑판에서 불과 1m도 안되는 차이로 빗나가면서 엔터프라이즈의 좌현쪽 바다에 추락했다.
오후 3시경에 전투공중초계 중이던 와일드캣 2대가 제8기동부대를 추적하던 2대의 일본 수상비행기를 격추했다.
오후4시경에는 다시 일본의 쌍발폭격기 2대가 나타나서 엔터프라이즈에 수평폭격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했다.
이때 엔터프라이즈의 대공사수들은 제6전투비행대장인 매클러스키 대위의 탄착수정 하에 1대의 일본 폭격기에 피해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이들이 철수할 때 맥클러스키 대위와 그의 요기는 피해를 입지않은 폭격기는 격추했으나, 대공포화로 피해를 입은 폭격기는 엔진에서 연기를 내뿜으면서도 와일드캣의 추격을 뿌리치고 기지로 돌아갔다.
이것이 일본의 마지막 반격이었다.
핼시 제독은 혹시라도 일본의 정찰기에 발견될 때를 대비하여 제8기동부대의 침로를 하와이 쪽이 아닌 북서쪽으로 잡았다.
그러다가 한랭전선을 만나서 적의 정찰기가 접근하지 못할만큼 해상상황이 충분히 거칠어지자 그때서야 침로를 북동쪽으로 바꾸어서 진주만을 향했다.
1942년 2월 5일, 엔터프라이즈는 진주만에 입항했다.
제8기동부대는 이번 마셜 제도 공격에서 1척의 수송선과 2척의 소형함정을 격침하고, 적기 9대를 지상에서 격파하고 공중전에서 8대를 격추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와일드캣 1대와 돈틀레스 5대를 상실하는 피해를 입었다.
한편, 길버트 제도를 공격했던 제17기동부대는 나쁜 날씨와 플레처 소장의 소극적인 전술 때문에 공식 기록에 남을만한 전과를 전혀 올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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